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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찬미: 할매 요정들이 추는 인생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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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2년생이다. 현재 칠십의 생을 살고 있다. 이번 2023 서울세계무용축제 프로그램에서 'aging body'라는 제목으로 일본 무용가들과 함께 춤을 췄다. 내게 그는 무대 위에서나 무대 밖에서나 늘 '요정'처럼 보였다. 이야기 나라에서 사뿐히 걸어 나온 듯했다. 그의 현실 속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늙어가는 몸'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아마 일상생활 속 그의 모습을 알지 못하기에 생긴 엉뚱한 고정관념일 것이다. 혹은 '춤추는 요정'에 관한 나의 왜곡된 판타지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aging body'라는 제목으로 무대를 꾸린다고 할 때 나는 정말 설렜다. 남정호의 이야기다.
탄생의 순간부터 계속해서 나이 드는 몸은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연결하는 분명한 매개체(medium)다. 춤을 추는 사람은 이 사실을 항상 각성한 상태에서 껴안고, 매번 새롭게 깨달으며 살지 않을까. 20~30대 전성기를 거쳐 40대에 접어들면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무대에서 사라지고 마는 게 무용계의 현실이었다. 그는 '백발의 무용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말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거슬러 춤추고 싶을 때까지 자기 멋대로 무대 위에서 춤추며 늙어가는 무용가의 전통도 있다. 그가 소개하는 무용가는 마사 그레이엄, 머스 커닝햄, 일본 부토 무용가 오노 가즈오, 그리고 밀양북춤 명인 등이다.
"춤을 사랑하는 무용가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무대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칼럼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무대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로 바꾸어 읽는다. 인생 자체가 시간이 추는 춤이고, 시간과 더불어 추는 춤이며, 시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추는 춤이지 않은가. 시간은 생성과 진화, 소멸이라는 변화가 일어나는 맥락이다. 집단적이며 동시에 매우 사적인 이 시간의 맥락은 각자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문장들)로 표현된다. 그런데 춤추는 사람은 이 시간의 이야기를 몸으로 들려준다. 리듬에 올라탄 몸이 펼치는 시간의 이야기는 기계적인 시간 순서의 서사가 아니다. 하나의 의미로 봉합되기를 거부하는 사건과 경험과 감정, 생각의 동시적 출현이다. 비평가라면 나름의 분석으로 적정 의미를 도출해 내겠지만, 핵심은 관객들도 덩달아 이 리듬에 올라타게 된다는 거다. 각자 자기 자신의 몸에 새겨지고 있는 시간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는 거다.
이번 공연에서 남정호는 일본 '할매 무용가' 게이 타케이와 우에스기 미츠요와 함께 시간의 춤을 추었다. 70세 이상의 무용가 출연이 불문율인 도쿄 씨어터 카이의 'Dancing Fairy: 춤추는 요정' 2022년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있는 공연이다. 바로 이거다! 내가 추상적으로 이해했듯이 '몸이 없는 것처럼'이 아니라, 오롯이 몸으로 나이 들고, 몸으로 요정인 할매 무용가들! 2022년에 참여했던 남정호는 '춤웹진'에, "긴장된 침묵, 우울하고 흥분된 생생한 현장의 숨소리와 땀 그리고 전장에 나서는 전사의 비장함을 글로 담을 자신이 없다"고 썼다. 나 역시 이들의 나이 든 몸이 만든 시간의 형상에 그저 경이와 감사만을 보내고 싶다. 시간을 계속 담고 있는 몸, 시간을 반죽하는 몸, 시간을 터질 듯이 품고 있는 몸. 일상을 살며 늙어가는 우리의 평범한 몸도 이렇게 시간의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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