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카페와 맛집들이 들어서며 젊은이들에게 '핫플레이스'로 주목받는 서울 성수동은 또 다른 이유로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요즘 성수동은 로봇 스타트업의 메카가 됐다.
식당 등에서 음식을 나르는 서비스 로봇을 만드는 베어로보틱스, 조리 로봇을 개발한 에니아이, 물류 로봇 업체 플로틱, 웨어러블 로봇업체 엔젤로보틱스 등 10여 개의 로봇 스타트업이 성수동에 모여 있다. 이뿐만 아니라 방역 로봇과 아이스크림 로봇 등 다양한 로봇을 만드는 엑스와이지는 사무실뿐 아니라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를 타 주는 무인 로봇 카페 '엑스익스프레스'까지 지난해 10월 성수동에 차렸다.
이처럼 로봇 스타트업들이 성수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동네 건물의 특수성 때문이다. 예전 성수동은 자동차 정비, 구두, 기계가공 등 작은 공장들이 많은 동네였다. 그렇다 보니 기계장치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건물의 층고를 높였고 무거운 공장 설비를 견딜 수 있도록 건물 바닥의 하중 설계를 특수하게 했다. 일반 사무 건물의 바닥이 평당 수백㎏ 무게를 견디는 데 비해 성수동 공장 건물들은 평당 1톤 이상의 무게를 버틴다. 심지어 일부 건물은 1톤 트럭이 탑승해 8층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 승강기까지 설치돼 있다.
그 바람에 철골 구조로 된 두꺼운 기둥이 내부에 버티고 서 있어 실내 공간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지만 무거운 연구 개발 장비와 조립 설비, 로봇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베어로보틱스의 서비스 로봇은 무게가 30㎏ 정도로 가볍지만 에니아이의 '알파그릴'처럼 햄버거 패티를 굽는 조리 로봇은 대당 무게가 200㎏ 이상이다. 에니아이 같은 로봇 스타트업은 이런 로봇 여러 대와 연구개발 장비를 회사 내 연구실에 비치해 놓고 로봇을 개발한다. 이런 이유로 로봇 스타트업들이 성수동을 선호한다.
공장형 건물은 성수동뿐 아니라 서울 구로동에도 있다. 그런데도 로봇 스타트업들이 성수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서울 강남과 강북 도심에서 가깝고 4개 전철 노선이 인접해 있어 인재 채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주변의 예쁜 카페와 맛집도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성수동이 로봇 스타트업의 메카로 떠오른 것을 보면 지역 특성을 잘 살린 개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무턱대고 건물을 밀어내고 새로 신축하는 것보다 기존 지역의 이점을 파악해 이를 살리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방증이다.
서울시는 지난 6월 성수동 삼표레미콘 옆 서울숲 주차장 부지에 스타트업 1,000개가 들어설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창업지원시설 '서울 유니콘 창업허브'를 2030년까지 조성하는 내용의 '서울창업정책 2030'을 발표했다. 여기 보면 서울 강남의 수서 일대에 로봇 클러스터를 만드는 계획이 들어 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은 반갑지만 로봇 클러스터 계획은 뜬금없다. 로봇 스타트업이 어떤 조건의 건물과 지리적 특성을 선호하는지 사전에 파악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성수동이 이미 로봇 스타트업의 메카로 뜨고 있다면 이를 잘 살릴 수 있는 지원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수동이 로봇 스타트업의 선호 지역으로 부상하게 된 특징을 정부와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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