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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중·러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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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Xⁿ + Yⁿ = Zⁿ (식 A)
300여 년간 수학자들을 괴롭혔던 '페르마의 정리(Fermat’s last theorem)'라는 게 있다. 식 A에서 n이 3 이상 정수일 때, 이 식을 만족하는 양의 정수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1637년 프랑스 수학자 페르마가 추측한 것인데, 실제 증명은 1995년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에 의해 이뤄졌다.
□ 페르마의 정리에서 확실히 구분되는 건 숫자 2와 3이다. 둘 사이에 ‘1’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2와 3은 차원이 다르다. 전략관계에서도 그렇다. 숫자 ‘3’의 복잡성은 ‘2’와는 비교할 수 없다. 세 나라가 있을 때, 가장 약한 ‘제3국’이 두 강자 가운데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힘의 균형이 달라진다면 오히려 최약국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 1,000년 전 고려가 송(宋)과 요(遙)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고 동북아시아 균형자 역할을 한 것도 3의 마법이다.
□ 북한도 국제관계에서 3의 마법에 생존을 맡겨왔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 줄타기 외교로 실리를 챙겼다. 중국 지원이 마땅치 않으면 러시아로, 러시아가 안 챙겨주면 중국으로 접근하는 행태를 보였다. 방탄열차로 떠난 김정은이 푸틴을 만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수렁에 빠진 푸틴도 다급해 보이지만, 연이은 위성발사 실패와 식량난으로 김정은도 러시아에서 도움을 얻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러시아가 푸틴이 김정은의 초청을 수락했다고 밝힌 걸 보면 북러 정상회담에서 중대 합의가 있었을 수도 있다.
□ 북·중·러 3각 구도를 이용해 김정은이 실리를 챙길지는 미지수다. 3의 마법이 통하려면, 김정은의 변심에 중국이 속수무책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과 한통속으로 엮이는 걸 원치 않는다. 미중 경쟁과 경제상황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러시아에서 위성·핵잠 기술을 얻으려는 북한 행보는 중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얻은 것보다 중국에서 잃는 게 많을 수도 있다. '시진핑 방한을 기대해도 괜찮을 듯하다'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의 발언도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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