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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중국 견제하려던 북한, 러시아에서 길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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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다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굴욕을 당한 뒤 칩거하며 와신상담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기회였다. 전쟁 초기부터 작심한 듯 러시아를 편들더니, 기어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까지 이끌어냈다. 기나긴 고립과 곤경을 벗어날 방도를 찾아낸 것이다. 두 지도자 모두 군사력을 우선시하는 만큼, 위험한 조합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 6명의 의견을 들어 봤다.
구체적 합의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북러의 거래 품목이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으리라는 게 중론이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안보 석좌는 13일(현지시간)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우주 기술과 재래식 무기를 바꾸려 한다”고 요약했다. 푸틴 대통령이 바라는 건 명료하다. 우크라이나에 쏠 포탄이다. 해리 카지아니스 ‘불량국가 프로젝트’ 대표는 “김 위원장이 수백만 발의 구형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하는 건 물론, 수백만 발을 더 생산할 것”이라며 “북한이 푸틴 대통령의 전쟁 기계에 동력을 공급하는 ‘악의 무기고’가 됐다”고 진단했다.
마침 북한도 절박한 처지였다. 핵무기 개발은 마지막 문턱을 넘기 힘들었고, 코로나19 방역 봉쇄로 식량, 의약품, 연료가 바닥났다. 두 번의 군사 위성 발사 시험도 실패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는 같은 기관의 엘런 김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과 함께 쓴 보고서에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을 품목으로 △식량 및 에너지 △군사 위성 기술 △핵 추진 잠수함 기술 △고체 연료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등을 거론했다.
여러모로 아쉬운 쪽은 김 위원장이었다. 국가가 사실상 파산 상태였다. 자주를 금과옥조로 삼는 북한으로선 지나치게 커진 중국에 의존하는 게 불편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고른 파트너가 미국이었다. 핵 포기를 걸고 2018년 담판에 들어갔다. 정식 수교가 목표였다. 그러나 이듬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하노이 협상이 틀어졌고, 김 위원장은 망신을 당했다. 깎인 체면을 세워 줄 거물로는 푸틴 대통령만 한 이가 없었다. 로버트 매닝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중국과 균형을 맞춰 줄 상대로 미국을 고르고, 북미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던 김 위원장이 이를 단념했다. 익숙한 중러 진영 내 관계 조정 쪽으로 전향한 결과가 북러 회담”이라고 분석했다.
결정적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제공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는 “러시아가 오랫동안 북핵 프로그램에 신중한 태도를 취해 온 게 사실”이라며 “이번 회담으로 북러 협력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회담 여파는 유럽과 동아시아 양쪽에 미칠 전망이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미정책국장은 “북러의 무기 거래는 우크라이나 침략전이 종착점으로 가는 속도를 늦추는 반면, 핵무기 등 북한의 군사력 진전은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끝내야 할 전쟁이 길어지고, 멈춰야 할 행보는 빨라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위기가 더 심각한 곳은 동아시아다. 매닝 연구원은 “러시아 요구대로 북한 무기가 러시아로 넘어간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아 온 국제사회의 노력이 큰 악재를 만날 것”이라며 “러시아의 이탈과 중국의 방관이 현실화할 경우, 기존의 핵 비확산 체제가 기로에 서게 된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대응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매닝 연구원은 “북러 모두에 추가 제재를 가할 새 방법을 찾고, 한미일 안보·정보 협력을 심화하며, 억지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국제 여론전을 펴고, 대(對)우크라이나 지원 확대로 맞불을 놓는 동시에 유럽과 한국·일본을 포함하는 ‘범서방’을 규합하리라는 것도 예상된 수순이다. 물론 북러 무기 거래의 증거를 포착하는 일이 이보다 우선이다.
반면 중국의 대응을 점치기엔 모호한 변수가 많다. 크로닌 석좌는 “표면적으로는 북러를 지지하겠지만 세계 경제에서 중국 비중이 워낙 커서 군사 우선 전략을 두둔하긴 힘들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글로벌 패권 경쟁국이라는 사실은 일종의 상수다. 매닝 연구원은 “당장 북러 밀착이 불편해도 더 큰 지정학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중국은 반서방 북중러 삼각 공조에 가세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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