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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명문기업 CEO "기부는 또 다른 기부를 낳는 기적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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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게 돈 버는 법은 안 가르쳤습니다. 그건 안 가르쳐도 스스로 깨우치거든요. 사실은 저도 돈 버는 법은 잘 모릅니다."
김휘대(61) ㈜광명에너지 공동대표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나눔명문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7월1일 군위군이 대구시에 편입된 이후 '군위 1호 나눔명문기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나눔명문기업은 1억 원 이상을 기부했거나 3년 이내 기부를 약정해야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다. 김 대표는 기부와 관련해 신념이 뚜렷하다.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돈 버는 법은 가르친 적이 없지만 '기부 교육'은 엄하게 시켰다. 그 결과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아들과 딸도 억대 기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나눔명문가문이다.
김 대표는 가문에서 '기부 1세대'다. 부모 세대에서는 기부를 할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부모는 모두 대구 군위군에서 농사를 지었다. 궁벽한 시골에 7남매가 넉넉하게 입고 먹으면서 학교에 다니는 건 불가능했다. 7남매 중 넷째였던 김 대표는 고교 시절 학비가 떨어지면 고향집이 아니라 경북 구미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큰누나가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누나는 동생이 찾아올 때마다 작업복을 입은 채로 공장 문 앞까지 나와 학비와 생활비를 쥐어주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결심했다. 나중에 돈을 벌면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꼭 갚기로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실습을 나갔던 ㈜서보에 입사했다. 전기·소방설비·정보통신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여기서 만난 이덕록 회장이 김 회장의 사회 스승이다. 이 회장은 기부를 생활화한 기업인이다. 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기부 기사가 줄줄이 검색된다. 이 회장은 평소에는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물건을 아껴 쓴다. 아파트에 버려진 가전제품이 있으면 그걸 고쳐서 그야말로 닳을 때까지 쓴다고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그에게서 "버는 돈의 50%는 남의 덕으로 버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 회장에게서 기부의 취지와 기부를 생활화하는 방법, 가장 효율적인 기부법을 배웠다.
IMF 때 ㈜서보에서 독립해 광명에너지를 차렸다. 그때 이 회장이 창립 자금의 50%에 해당되는 금액을 투자금으로 내놓았다. 김 대표가 모은 50%와 이 회장이 투자해준 50%로 회사를 시작했다. 그 뒤로 50%는 남 덕분에 버는 돈이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평범한 기술자에서 시작해 30년간 한 회사에 매여있다가 독립해 연매출 500억 원을 상회하는 기업을 일구어 나름 샐러리맨의 신화를 쓴 김 대표지만 "돈 버는 기술은 제로(0)"라고 말했다. 한번도 돈 버는 기술을 배우거나 적용해서 돈을 벌려고 애쓴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홍보용 멘트가 아니다. 그의 생활 패턴을 보면 금세 납득이 된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저녁에 잠드는 시간은 대개 9시 즈음이다. 당뇨를 유전으로 물려받아 30대에 발병하는 바람에 저녁을 먹으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는 것도 한몫했다. 건설회사에 종사하거나 회사를 경영하노라면 으레 저녁 술자리와 접대 등으로 인맥도 쌓고 관계도 돈독하게 해야된다고 알고 있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김 회장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애당초 그런 스타일의 경영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골프도 치지 않는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주말을 가족과 함께한다는 철칙을 세운 까닭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기술'이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전기와 정보통신 관련 공사, 신재생에너지(태양열)와 관련해서 늘 '최고'를 추구했다. 엔지니어로서의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돈보다 기술에 파고들었다. 공사를 어떻게 따내서 이익을 어느 만큼 남기느냐 하는 ‘경영’보다는 맡은 일을 누구보다 잘해서 최고의 기술자로, 기술기업으로 인정받는데 전념했다.
대기업에서 하청을 받아 일한 적도 없었다. 원도급으로만 공사에 참여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집념이 바탕에 깔린 경영이었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관련해서도 회사에 영업사원을 두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사업 하면 곧 영업능력으로 통할 정도로 영업이 중요하지만, 이 부분도 기술로 승부한 것이다. 김 대표는 "영업비가 안 드니까 공사 원가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고 귀띔했다. 통상적으로 AS 기간이 3년이 그치지만 김 대표는 "회사가 망할 때까지 공구들고 수리하러 간다"고 공언했다. 부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영업은 사업주들이 한다. 그에게 공사를 맡겨본 사업주들이 태양광공사를 원하는 이들에게 김 대표를 추천했다. 그에게 기술은 곧 신뢰고 영업이다. 품질에 대한 신뢰를 깨지 않는 것에 올인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 회사가 한번도 기우는 일 없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간혹 최선을 다해도 계약 업체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피해를 보상해주는 선택을 했다. 그는 "크게 돈 버는 비결은 아니지만, 망하지 않고 기업이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돈 벌 기회라는 게 있어요. 회사가 급성장하는 계기도 있구요.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기회를 다 외면했습니다. 그저 기술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진짜 돈 잘 버는 사업가에게 저는 돈 못 버는 사람이죠."
발주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김 대표의 철칙이다. 너무 친해져서 "형님" "아우"하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분위기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오로지 기술과 품질로 승부를 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자기 관리인 셈이다.
"사람 좋다는 말보다 일 잘한다는 말이 훨씬 좋았습니다. 엔지니어의 자존심이죠."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부도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기부는 철저한 원칙을 따른다. 10원이라도 가장 값어치 있게 사용될 수 있도록 효율적인 방법을 채택해왔다. 기부에 관해 박사학위가 있다면 김 대표에게 1호 박사가 주어져도 손색이 없겠다 싶을 정도의 논리다.
30대 때부터 기부를 시작한 그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켜왔다. 첫째, 꾸준히 기부한다. 둘째, 항상 사각지대를 살핀다. 셋째, 가까운 곳에 기부한다.
김 대표는 30대에 기부를 시작해 지금까지 늘 기부를 생활화했다. 기부가 끊기지 않고 이어진 이유는 '반반 마인드' 때문이다. 100만원을 번다고 할 때 50만원은 본인의 노력이겠지만 나머지 50은 주변에서 도와줬기 때문에 버는 돈이라는 생각이다. 기부가 아깝지 않고 당연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바탕에 깔려 있는 까닭에 기부를 그친 적이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늘 사각지대를 살폈다.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적극 개입했다. 이를테면 장학금도 장학회에서 규정 때문에 장학금을 지급할 수 없는 학생에게 사비를 털어 지급하는 식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깜깜이 기부를 지양한다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고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기부를 한다. 김 대표는 가장 먼저 돌보아야 할 사람들로 가족을 꼽았다. 고등학교 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건냈던 누나는 현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형제들 중에서도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이들만 회사에 받아들여 본인들의 깜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을 맡겼다. 그냥 "동생 혈족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편하게 일하고 싶다"는 가족 구성원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장학금의 경우도 늘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학생들에게 지급했다.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독립할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 기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실질적이고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김 대표가 기부를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기부 종료 이후다.
"기부를 받고 자란 학생들이 자리를 잡으면 대개 자기보다 힘든 친구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제 기부가 한 사람이 혜택받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살리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보다 큰 보람이 없습니다."
김 대표는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낸 만큼 장학금과 교육 사업에 특히 관심이 많다. 그는 2021년 군위 효령면 마시리에 항공특성화고가 추진될 때 계획이 수립되고도 2년 동안 학교 부지를 구하지 못해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 부지선정에 큰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토지보상금 일부를 교육발전기금으로 기탁하기로 약속했었다. 그가 내놓은 부지는 3만3,057㎡(1만 평)에 달했다. 고향인 군위가 교육에 관한 한 대도시 못잖은 저력을 갖춘 도시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도 가장 간절한 소망이자 기부의 목표다.
김 대표는 요즘도 4시에 일어난다. 직원들이 출근하는 9시 전까지 업무의 50% 이상을 마무리한다. 시간이 남으면 건물 곳곳을 다니면서 고장 난 곳을 직접 수리한다. 사업과 기부를 가르쳐준 이덕록 회장과 똑같은 삶의 패턴을 지키고 있다. '돈'에 무심한 태도, 성공이 주변의 도움이 있어 가능하다는 신념 역시 변함이 없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문의 철학을 세우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내 수익의 50%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는 것, 그러므로 기부를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 기부가 더 큰 기부를 낳는 씨앗이 된다는 신념이 가문의 철학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종사하는 분야와 우리 회사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한번도 쇠락기를 겪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고 사랑받아온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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