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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적 규율 통제의 정체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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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다수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한 진은영 시인과 20년 이상 출판 편집 기획자 생활을 거쳐 온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 글을 씁니다.
프랑스어판 제목은 '감시와 처벌'(1975년)이지만 영어판 제목은 '규율과 처벌'(1977년)이다. 감시와 규율 사이에서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파놉티콘의 역할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질서는 그렇게 생성된 규율의 권력에 의해 유지된다.
저자인 미셸 푸코는 국가 권력의 기원을 설명하는 ‘사회계약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권력은 재화처럼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환이나 양도도 불가능하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권력은 어떤 관계에나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속성이다. 모든 관계는 균등하지 않고 유동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것이고, 그 관계는 규칙이 만들어지고 지켜지면서 유지된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규율하는 힘이 권력이다. 그 권력은 파놉티콘에서 나온다.
그것은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이 내놓은 감옥 구조에 대한 ‘건축학적 아이디어’였다. 그곳에서 간수는 죄수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간수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규칙 위반이라도 엄하게 처벌된다.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야말로 질서를 해치는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죄수는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런 시간이 누적되면 감시당한다는 느낌만으로 감시할 수 있다. 죄수는 규칙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규율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동하는 권력은 매우 경제적일 뿐 아니라 지속적이고 자동화된 메커니즘에 의한 효과까지 만들어낸다. 이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권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적용하는 새로운 통제 수단이 되었다. 더해서 규율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고 규칙을 내면화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기술도 개발되었다. ‘개별화’하여 분리해서 관리하고, ‘기록’하여 자료를 축적함으로써 미래 행동을 예측하며, ‘상벌’을 통해 위계질서화하는 것이다.
시험이 그런 역할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통제 기술이다. 시험은 규격화된 자격을 부여하고, 처벌 기준을 만드는 감시 방법이며, 개개인을 분류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자료 축적 과정이다. 뿐만 아니라 관련 기록을 통하여 개인을 하나의 사례로 만들고 그 사례는 권력의 포획물이 되어 지식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규율 장치에는 시험이 고도로 관례화되어 있다. 진실을 확립하는 힘을 통해 경험의 형식까지 규정하는 권력의 리추얼인 것이다. 리추얼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면서 권력 기반을 확고하게 만든다.
파놉티콘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규율의 권력은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 있을 뿐 아니라 그 구조 전체가 우리 삶을 규정하는 비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푸코는 이런 기술과 전략이 부르주아가 지배층으로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감시와 처벌'은 루이 15세를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사지가 찢기는 공개처형 장면에 대한 자세한 묘사로 시작된다. 이어서 75년쯤 지난 뒤의 감옥형을 상상케 하는 규칙을 제시한다.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끔찍한 신체형은 사라지고 비교적 온순한 처벌이 등장한 것이다. 인도주의적인 사고방식 때문이 아니라, 이전의 처형 방식이 전혀 경제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부담도 컸다. 처형장에 모인 민중들은 대개 죄수들과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판결에 불만을 품고 죄수에게 공감하는 경우도 많았고 그럴 때는 사형집행인에게 야유가 쏟아졌다. 심각한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처벌이 질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죄수를 영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옥형은 달랐다. 그것은 형벌이 신체가 아니라 정신에 가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목표가 바뀐 것이다. 자유를 박탈한 뒤 규율이 작동하도록 교정된 인간을 만들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수감자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했다. 여기에서 새로운 지식과 권력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감옥은 학교나 병원, 군사기관(비밀 임무를 맡거나 정보원 역할을 하는 범죄자를 제공했다), 공장과 같은, 현대사회의 모든 것이 포함된 특성들을 두루 갖춘 기관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서 의학, 심리학, 범죄학이 과학적으로 검증되며 연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관리’ 계획이 실제로는 한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감옥에 가두어 감시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교정 효과는 적었을 뿐 아니라 범죄자를 확대 재생산했다. 범죄 발생률이 늘어나기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감옥은 교정된 범죄자를 석방해온 것이 아니라 범죄자를 주민들 속에 분산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밖에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감옥의 간수들이 권력을 남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간수들은 어떤 자들이었던가? 제대한 군인들, 직업상 악인들을 감시하는 자신들의 직분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갖고 있지 않은 무식한 자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교육적 효과도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석방된 범죄자들에게 가해지는 열악한 사회적 조건들은 그들을 재범자가 되게 내몰았다. 주거가 불안정하고 일거리도 구하지 못해 굶주릴 수밖에 없으니 다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감자 가족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도 범죄자가 되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는, 감옥이 범죄자들을 모아둔 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위계질서를 이루고 연대하여 미래의 공범 관계를 준비하는 범죄자 집단을 조직할 수 있었다.
결국 감옥의 역사는 재범자를 줄이는 교정 효과가 없음을 증명했다. 그러면서도 이중의 경제적 오류를 범했다. 감옥 운영 비용을 지불하면서 범죄 발생률까지 높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감옥의 역할은 무엇인가? 범죄자와 범죄성향을 관리하고 격리함으로써 위법행위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하는 기관으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감옥을 운영하면서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 단속을 비교적 쉬운 일로 만들 수 있었다. 경찰은 감옥에 범죄자를 공급하고 감옥은 그들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여 단속 대상과 방법을 분명히 하고 그들 가운데 경찰을 보조할 수 있는 밀고자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범죄자들을 관리하고 격리하는 언론의 역할도 컸다. 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완벽하게 조성하려는 장기계획이 실행되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범죄자들을 별종으로 묘사하여 두려운 존재로 부각시킨 것이다. 그것이 언론 사회면 기사의 기능이었다. 그러나 부유층의 범죄에 대해서는 법원도 관용을 베풀었고 언론도 비밀을 엄수했다.
그런 상황이 되풀이되자 민중신문이 ‘반 사회면 기사’를 통해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범죄 사실을 부각시키고, 그들이야말로 육체적 타락과 정신적 부패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었다. 빵 하나를 훔쳐 범죄자가 된 하층민들의 경우는 굶주림과 빈곤이 원인이었음을 강조했다. 당연히 그 책임의 일부는 사용자와 사회 전체에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범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급에 속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비호를 받거나 감옥형에 처해지는 역학관계가 있을 뿐이며, 설사 심각한 범죄라 해도 그것은 권력의 억압에 대한 운명적 회귀이자 항거이며, 사소한 위법행위는 사회 내부에서 벌어진 전투 중에 터져 나오는 분노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푸코도 그쪽에 섰던 것 같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전에 ‘감옥 정보 그룹’ 운동을 주도하며 중앙권력에 저항하는 투쟁을 벌였다. 파놉티콘의 규율 권력에 고분고분 적응하지 않았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중심적이고 중앙권력 지향적인 사람들 틈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마무리 문구는 책의 시작에 등장하는 공개처형 장면의 사형수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대담하게도 잘려지고 찢겨나가는 자신의 몸을 자주 조용히 바라보았다. 할 말이 없느냐고 묻는 집행인에게는 단호하게 ‘없다’면서 ‘당신들은 맡은 일이나 하시오. 나는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소’라고 말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통한 파놉티콘의 규율이 아무리 교묘하고 정교하게 민중을 통제한다 해도 결코 그에 저항하는 힘을 없애지는 못 하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강창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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