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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어디 가세요?"… 치매 실종 막는 일본의 '특별한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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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치매 실종 경보 문자. 매일 40명의 노인이 길을 헤매고 있다. 치매 실종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하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치매 실종자 가족 11명의 애타는 사연을 심층 취재하고, 치매 환자들의 GPS 데이터를 기반으로 배회 패턴을 분석했다. 치매 선진국의 모범 사례까지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가족이 실종 신고도 하기 전에 주민들이 찾아서 경찰에 알린 거죠.
오마가리 미에 오무타시 복지과 과장
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서 지난해 경찰이 보호한 길 잃은 치매 노인은 174명. 그중 가족이 실종 신고한 경우는 73건(42%)뿐이다.
절반이 넘는 노인들은 가족이 배회·실종을 알아채기도 전에, 지역주민 신고를 통해 경찰에 인계됐다. 가족들은 치매에 걸린 엄마를 잃어버린 줄도 몰랐는데, 실종된 엄마를 찾았으니 데려가라는 경찰 연락부터 받은 셈이다.
일본 규슈 동쪽에 자리 잡은 오무타시는 과거엔 탄광 산업으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인구 10만 명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작은 도시다. 하지만 치매 돌봄에 관해선 일본 내 모범 지자체로 꼽힌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앞다퉈 오무타시가 만든 치매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오무타시 관계자는 지난달 17일 방문한 한국일보 취재진에게 "치매 환자가 배회하더라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목표"라며 지역사회가 배회하는 노인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소개했다.
오마가리 미에 오무타시 복지과 과장은 '안전한 배회'를 정착시킨 비결로 매년 실시하는 '치매 환자 실종 모의훈련'을 꼽았다. 2004년 시작된 이 훈련은 실제 혹은 가상의 치매 환자가 시내에서 배회하면, 시민들이 실종 정보를 전달받아 비슷한 사람과 마주치면 말을 걸고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04년 오무타시 하야메 교구(敎區)에서 배회하다 사망한 치매 노인이 발생하자 도입됐다.
훈련 효과는 탁월했다. 오마가리 과장은 "훈련 때 치매 환자에게 말을 걸어본 경험이 쌓이고 쌓여,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하기도 전에 이웃들이 배회하는 환자를 먼저 찾아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덕분에 치매 환자가 집을 찾지 못하더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노인이 혼자 길을 걷고 있으면 무조건 신고가 접수되는 건 아니다. 말을 걸어봤을 때 자신의 이름·거주지를 모르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는 특징을 보여야 한다. 근처에 사는 치매 환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점도 실종자 찾기에 도움이 됐다. 오무타시 내 23곳에는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지역교류센터'가 있으며, 센터는 모두 돌봄시설 내에 설치돼 있다. 치매 환자·보호자뿐 아니라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이 돌봄시설 안에 있으니, 주민들은 이웃 중 누가 치매 환자인지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시내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훈련이 실시되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하기 때문에 정확한 참여 인원을 집계하긴 어렵지만, 지난해 최소 3,000명이 훈련에 동참했다고 시는 설명했다. 오무타시의 모의 훈련이 화제가 되면서 이와테현, 이바라키현, 치바현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에 나섰다. 훈련은 매년 치매 극복의 날인 9월 21일 전후에 진행되는데, 올해부터는 태풍이 오는 기간을 피해 11월에 실시할 예정이다.
오무타시에서 치매 실종자가 발생하면 수색 주체는 경찰이지만, 민간기관과 시민들도 경찰에 준하는 수준으로 치매 환자 찾기에 나선다.
시청에선 '애정넷'라고 불리는 문자 발신 시스템을 통해 실종자의 이름, 나이, 실종 위치 등을 가입자에게 전송한다. 현재 1만여 명이 가입돼 있는데, 상습적으로 배회 증상을 보이면 미리 애정넷에 치매 환자의 인적사항을 등록할 수 있다. 환자가 배회하다가 오무타시를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주변 지역과 공조하기 위한 '광역 애정넷'도 있다. 오무타시는 후쿠오카현 치쿠고 지역의 12개 지자체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소방본부, 시청 등 다른 공공기관과 정보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지역 버스·택시회사, 철도역, 약사회, 은행, 도로 관리 사무소 등 협약을 맺은 민간단체에도 정보를 전송한다. 지역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이들이 실종자 수색에 동참하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치매 환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마가리 과장은 "택시 기사가 치매 노인을 찾아 경찰서에 데려다주거나 역무원이 개찰구 앞에서 치매 환자를 알아보고 신고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협력 네트워크를 맺은 민간단체는 시청이나 경찰과 정기적으로 치매 환자 수색과 관련한 회의를 열고 있다.
시민들 역할도 적지 않다. 한국의 통장 격인 민생위원들은 애정넷에 등록된 상습 배회 환자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해당 환자와 안면을 튼다. 오무타시 내 돌봄시설 운영자들의 모임인 '치매라이프 서포트 연구회' 우메자키 유우키 대표는 "가끔 새로운 치매 환자가 애정넷에 올라오면 민생위원이 돌봄시설로 찾아와 환자와 인사하고 간다"며 "실종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생위원들은 이 밖에 구역별로 실종자 발생 시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 단체방도 운영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치매 종합대책인 '신오렌지 플랜'을 수립했다. 핵심은 심각한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자신만의 생활을 하며 생을 마감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지자체가 배회·실종에 대비하는 게 필수적인데, 오무타시가 이를 잘 이행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일본 내 치매 실종 건수는 1만8,709건으로, 5년 전에 비해 2,000여 건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실종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점에 주목하고, 배회 환자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게 낫다고 주장하지만, 안전하게 배회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오무타시의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우메자키 대표는 "치매 환자가 본인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 그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지역 사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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