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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가의 성공 비결은?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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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우리 아이, 현대미술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미술대학 진학 상담을 할 때마다 반드시 나오는 질문이다. “우리 애가 화가나 조각가가 돼도 먹고살 수 있을까요?” 궁금한 것이 당연하다. 지난 5월 종로학원 설문조사 결과, 초·중학생 학부모의 90%가 자녀의 이과 진학을 원했고, 그중 절반이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다. 의사의 경우 유명해지지 않아도 면허만 있으면 어느 정도 ‘경제적 성공’을 이룬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대미술가는 국내외 미술계가 알아주는 이름을 얻어야 이 같은 ‘성공’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오늘날 현대미술가의 성공은 유명해지느냐에 있다. 불편하거나 불쾌할 수는 있어도 부정할 수 없는 얘기다.
정작 예술가들은 창작의 즐거움이나 욕구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대미술가의 성공은 동시대 미술시장의 인정 여부로 정해진다. 육상 선수의 재능은 초시계로 측정할 수 있지만 현대미술가의 재능은 측정 장치가 없다. 의사의 수입은 의료수가에 따라 정해지지만 예술가의 작품가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해진다. 어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했는지, 작품이 얼마에 어떻게 팔리고 있는지, 평단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등이다. 그래서 우리는 궁금하다.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현대미술가의 성공'을 연구한 두 개의 논문을 살펴보자.
2012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추상의 태동:1910-1925’ 기획전이 열렸다. 당시 이 전시를 기획했던 큐레이터는 20세기 전후 80명의 예술가와의 친분 관계를 조사했는데, 폴 잉그램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도 참여했다. 6년 후 2018년, 폴 교수는 2012년에 수집했던 자료를 토대로 20세기 초 추상미술의 선구자 90명을 선정, 그들의 명성과 창의력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연구했다. 논문 제목은 ‘창의력으로 성공했다는 착각: 추상미술 선구자들이 남긴 증거’다. 예술가의 이름남을 가늠하는 지표로는 영어·프랑스어 구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고, 2012년 조사에서 확보한 서신, 일기, 문헌기록 등을 참고했다. 그들의 국적, 성별, 연령, 거주지, 출신학교 등도 분석했다. 이러한 정량평가 외에도 4명의 권위 있는 미술사학자로부터 이들 작품의 독창성과 창의성에 대한 정성평가도 받았다. 그 결과 연구팀이 도달한 결론은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친구를 만드는’ 것이 성공적인 예술가를 만든다"였다.
즉 초기 현대미술가의 유명도는 창의적 작품 때문이 아니라 인맥의 영향이 더 컸다는 분석이다. 재능과 창의성이 높을수록 예술가가 유명해지고 성공할 것이라는 막연한 고정관념은 착시 효과였다. 특히 대도시 중심의 다국적 정체성(cosmopolitan identity)과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 예술가가 높은 인지도를 보였는데, 이들 중 최고봉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였다. 칸딘스키의 인적 네트워크에 연결된 인물일수록 미술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다만 이 연구에는 예술가의 전시 기록이나 작품가가 포함되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까지 포함한 또 다른 연구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국내에도 출간된 ‘물리학자의 자기계발서’로 화제가 된 ‘성공의 공식 포뮬러’의 저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미국 노스이스턴대 네트워크 과학학과 특훈교수의 연구다.
그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다. 2018년 바라바시 교수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예술에서의 성공과 명성에 대한 정량화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잉그램의 연구가 100년 전에 활동했던 예술가 90명의 빅 데이터를 중심으로 했던 것과 달리, 바라바시의 연구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전 세계 50만 명의 빅 데이터가 담긴 애플리케이션(앱)을 적용했다. 독일계 미술학자이자 사업가인 마그누스 레시(Magnus Resch)는 소수가 독점하는 현대미술시장의 불투명성을 비판하며 1980~2016년 활동한 미술가 50만 명의 정보를 담은 '마그누스 앱'을 개발하였다. 여기에는 갤러리 1만4,000개, 미술관 8,000개의 전시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다. 미대, 갤러리, 미술관, 예술단체, 아트페어(미술시장) 등 미술계의 각 기관은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하며 누구를 중심부로 들일지 말지 결정한다. 바라바시 연구팀은 이러한 게이트키퍼를 노드(node·네트워크 상의 지점)로 설정하고, 수만 개의 노드가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 지도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어떤 예술가의 첫 5개의 전시회를 네트워크 지도에 올려놓으면 10년, 20년 후의 경력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경력 초기 첫 5개 전시에서 평판이 높았던 미술가들의 58.6%는 기록된 경력이 끝날 때까지 높은 평판을 유지했고 하위 평판으로 거의 이동하지 않았다. 이들의 39%는 10년 동안 계속 전시를 이어갔다. 그러나 첫 5개 전시에서 평판이 낮은 예술가들 중 10년 후에도 활동하는 경우는 14%에 그쳤다. 육상 단거리 종목에서 선수가 앉은 자세로 있다가 출발하는 ‘크라우칭 스타트’(Crouching Start)가 효과적일수록 경주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지듯이 미술가의 첫 5개 전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바라바시 연구팀은 1950~1990년생 예술가들 중에서 오래 활동했던 약 3만 명을 다시 조사했다. 여기서 첫 5개 전시의 초기 평판이 최하위였던 2,000명 중 10.2%가 20년 후 상위 20% 진입에 성공했다. 최하위 기관에서 시작했지만 최상위 기관에 도달한 이들이다. 바라바시 교수는 이 250명에 주목했다. 이들이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는 과정이 의미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한 이 250명의 예술가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①순발력
이들은 경력 초기에 망설이지 않고 닥치는 대로 전시했다. 한 갤러리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활동하던 중에 중심부로 향하는 연결고리 노드를 확보했다. 학력, 자본, 인맥이 부족하다면 시작부터 순발력을 동원해야 한다. 바라바시는 미국 북동부 8개 명문 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원서를 냈지만 아쉽게 불합격했던 학생들을 조사했는데 상당수가 아이비리그 졸업자들과 유사한 성과로 성공을 거뒀다는 연구결과를 예로 들었다. “출발하는 시점부터 정상에 오르겠다는 열망과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②지구력
이들은 멈추지 않고 꾸준히 전시했다. 출발선에서 중요한 것이 순발력이라면 완주에 필수적인 힘은 지구력이다. 미술계의 공공연한 비밀 가운데 하나는, 한번 책정된 작품가는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해야 미술가, 수집가, 갤러리 모두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단순 가격 경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게 미술시장의 특성이다. 이를 잘 활용하는 방법은 오히려 평판이 오를 기회를 잡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마라토너가 되는 것이다.
③친화력
이들은 상당히 사교적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 자신을 알리기보다는 미술계 관계자를 직접 만나며 교류했다. 현대미술시장은 국적을 초월한 하나의 시장이다. 하지만 예술 인프라가 좋은 선진국 대도시에 거주할수록 유리한 좁은 시장이기도 하다. 초연결망 시대에 SNS 소통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라고 여기며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 미술가들이 많다. 그러나 바라바시는 “중요한 것은 내가 유명 갤러리나 미술관을 팔로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를 팔로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게이트키퍼 격인 그들과의 스킨십이다.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악수해야 한다.
“아니, 실력과 재능이 아니라 인맥과 친분이 중요하다니!”라고 한탄한다면 큰 오해다. 앞서 살펴본 두 연구 모두 공통의 전제가 있다. 흔히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창의력과 재능은 미술계 진입을 위한 필수 기본 요건이라는 것이다. 천재, 영재로 불리는 아이가 그 재능으로 성공해야 맞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유명 미대 출신이라도 미술계 네트워크 안에서 순발력, 지구력, 친화력이 부족하다면 장거리 경주는 쉽지 않다.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 이는 세상에 많다. 흔히 ‘독서량이 많으면 성적이 좋을 것’이라 여기지만, 연구에 따르면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독서량이 많을 뿐’이다. 또래보다 뛰어난 재주와 재능 자체가 실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 아이 미대 가도 될까요?”라는 질문 대신 “우리 아이 미술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야 한다. 디자인, 애니메이션 등 응용미술 분야를 원하는지, 전시회를 열고 미술시장에 작품을 파는 현대미술가를 꿈꾸는지에 따라 세부 조언은 달라진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성공에 이르는 방향은 동일하다. 바라바시 교수는 “예술처럼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분야일수록 네트워크가 성공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라바시 교수는 50만 명의 인생을 추적했다. ‘사주팔자’를 만드는 경우의 수도 51만 개다. 46억 년 살아온 지구 위에 현재 80억 명의 인생이 있다. 50만 명의 인생, 50만 개의 삶에서 어떤 공통적 확률일 뿐, 불변의 진리가 되는 성공법은 어차피 없다.
자기계발서가 주장하는 성공법은 ‘쌀로 밥 짓겠다’는 식의 당연한 결론인 경우가 많다. 뭔가 대단한 성공 비책이 있나 싶지만 결국 비슷한 얘기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원칙이다. 그리고 그 단순한 원칙이 현대미술가를 꿈꾸는 자녀에게 부모가 들려줄 수 있는 성공의 비밀이다. 결국 밥은 쌀로 짓는 것이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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