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법률 분쟁, 소송보다는 조정이 나은 이유

입력
2023.09.18 04:30
수정
2023.09.22 14:17
25면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 성취도 크지만, 한국의 중년은 격변에 휩쓸려 유달리 힘들다. 이 시대 중년의 고민을 진단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해법들을 전문가 연재 기고로 모색한다.

법률 : <2> 패자만 남는 소송, 해법은?

소송과 조정, 어느 쪽이 현명한 판단일까?

소송과 조정, 어느 쪽이 현명한 판단일까?


중년, 이중 부양에 고용 불안까지
감정 대립·소모 극심한 소송보다
대화·타협 유도하는 '조정' 활용

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 이주원(51ㆍ가명)씨는 13년 만에 미국계 회사 한국지사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처음엔 막내인 이씨와 오빠들이 순번을 정해 병간호를 하고 병원비도 똑같이 분담했지만, 8개월이 지나자 오빠들은 점점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여기에 팬데믹 영향으로 한국지사 매출액은 곤두박질쳤고, 미국 본사는 이를 핑계로 이씨를 해고했다.

그런데, 설상가상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오빠들이 갑자기 이씨를 경찰에 고소하고 소송까지 제기했다. “어머니가 아픈 틈을 타 어머니 돈을 마음대로 썼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씨 입장에서는 간병비에 자녀들 학비까지 빚으로 충당했건만, ‘어머니 재산도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빠들이 섭섭하기만 했다.

우리나라 중년은 절반 이상이 부모와 자녀를 이중부양하고 있다. 사회의 중추 세력으로 가장 빛나고 중요한 시기를 보내면서도 이중부양과 고용불안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법률 분쟁에 휘말리게 될 확률이 높은 시기이기도 하다.

중장년층 부양 실태

중장년층 부양 실태

법률 분쟁을 법원에서 해결하는 대표적인 방법에는 ‘소송’과 ‘조정’이 있다. 일반적으로 조정이 소송에 비해 비용과 시간이 절감되며 비밀도 보장된다는 면에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 번의 합의로 종결되는 만큼, 이해 관계와 당사자가 많은 분쟁에서는 활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당사자 간 감정이 극단적으로 대립한 경우 ‘진정한 복수를 하고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소송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소송과 조정의 특징

소송과 조정의 특징

그렇다면 소송과 조정, 어떤 것이 나에게 맞춤 해결 방법일까? 필자의 경험에 비춰 생각해 보자.

먼저, 중년기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가족관계 분쟁에서는 ‘조정 제도’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년은 오랜 기간 쌓아온 관계를 바탕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다.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고충 소송은 극단적인 감정 대립과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지루한 소송 끝에 3~4년 후 승소해도 손상된 관계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승자가 될 수는 없는 이유다.

반면, 조정에서는 당사자 간 법률 용어 공방이 아닌, ‘대화’가 오간다. 이 과정에서 서로 몰랐던 상대방의 처지와 행동의 이유, 그리고 사건ㆍ사고의 배경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서로 사과까지 오가는데, 실타래처럼 꼬인 마음이 치유되면서 분쟁을 단번에 끝낼 수도 있다. 위 사례의 이주원씨도 조정을 택했다. 어머니 간병 중 힘들었고 외로웠던 이야기를 오빠들에게 털어놨고, 서로의 오해가 풀리면서 다툼도 눈 녹듯 종결됐다. 상속분에서의 기여도도 상당부분 인정받은 것은 물론이다.

직장 관련 분쟁도 조정 절차를 이용해 보는 것을 권한다. 근로자들은 회사와 분쟁이 발생하면, 보통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데 대법원까지 무려 5번의 판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과 상당한 비용을 감내할 여력이 없는 근로자는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이 지나 승소해 복직하더라도 정들었던 동료와 팀은 떠나고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주원씨는 조정을 통해 8개월간 ‘시험 복직’하되, 연말에 목표 매출액 달성 시 지사장에 복귀하는 것으로 본사와 합의했다.

돈을 빌려줬는데 상대방이 제대로 갚지 않은 경우에도 조정이 도움이 된다. 신속하고 저렴하게 피고(채무자)의 재산에 집행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보통 피고는 분쟁이 신속히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시간을 끌수록 진실규명이 어렵고, 피고가 그사이에 재산을 은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에 의하면 소송보다 조정이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고 피고가 자발적으로 변제하는 비율도 현저히 높다. 다만,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가 많거나 청구 금액이 고액인 경우에는 소송이 조정보다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조정기일이 여러 번 열려도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아 허탈한 감정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조정 절차를 시작할까? 소송이 이미 시작됐다면 담당 재판부에 ‘조정 회부’를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소송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법원에 조정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조정 신청은 인지대 금액도 소송에 비해 10분의 1로 저렴하다. 조정에서 합의하지 못했다면, 일단 소송을 진행했다가 다시 조정을 시도하는 유연한 접근도 고려할 만하다.

중년에 분쟁이 발생하면 인생의 전부가 흔들리는 것 같은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사실 분쟁은 아프고 힘들며, 웬만해선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인간관계를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재정비할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혹시라도 분쟁이 발생했다면 제2 인생의 의미 있는 시작을 위해 ‘조정’을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박은지 변호사ㆍ서울중앙지법 상근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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