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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터에서 직물공장 카페까지… 90분이면 강화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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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한국사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굵직한 역사의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1시간 30분가량 진행하는 '강화 원도심 고려도성 도보해설 투어'를 이용하면 고려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의 역사가 입체적으로 파악된다. 무료로 진행되는 투어는 네이버에서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신청하면 된다. 용흥궁 입구 관광안내소에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용흥궁이다. 조선 제25대 임금 철종(1849∼1863년 재위)이 살던 집이다. 철종은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순원왕후의 명으로 궁중에 들어가 즉위했다. 재임 중에는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위세에 눌려 왕권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왕위에 오른 후 강화유수 정기세가 새로 지은 용흥궁도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 궁이라 이름했지만 웬만한 양반가에 비해도 소박한 편이다. 실제 살던 집터에는 비각이 들어서 있다. 지붕을 덮은 커다란 단풍나무 가지가 그나마 운치를 더한다.
용흥궁 뒤뜰에서 계단을 오르면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으로 이어진다. 1900년에 건립된 한옥 양식 성당이어서 눈길을 끈다. 입구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외삼문 내삼문을 통과해 본당이 나타난다. 사찰의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거쳐 대웅전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한자로 쓴 ‘천주성전(天主聖殿)’ 현판과 기둥마다 내걸린 주련도 불교양식이다. 그러나 내부 공간은 직사각형 본당에 반원의 벽을 살린 바실리카양식을 따르고 있다. 한국적 외양에 서양의 정신을 이식한 모양새다. 성당은 강화 읍내를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위치다. 궁궐 위에 지은 것부터 구한말 나라의 위세가 짐작된다.
성당 아래 공원에는 강화 3·1 독립만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19년 3월 13일 강화 장날 80여 명의 학생이 만세시위를 벌였고, 18일에는 2만여 명의 군중이 장터에 집결해 행진을 전개했다. 강화 주민 대부분이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월 1일까지 진행된 만세시위로 60여 명이 체포되고 50여 명이 재판에 넘겨졌다고 한다.
강화초등학교 옆 골목을 따라 오르면 고려궁지가 나타난다. 고려 고종19년(1232) 몽골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에 사용하던 궁궐터다. 그러나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한 후 강화 고려궁은 정궁의 지위를 잃었고 조선시대에는 그 자리에 외규장각이 들어섰다. 현재도 강화유수부 동헌과 외규장각이 복원돼 있어 외형상 고려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외규장각 건물 뒤로 올라서면 강화 읍내와 읍내를 둘러싼 남산의 풍경이 고즈넉하게 조망된다.
다시 용흥궁 부근으로 내려오면 공원 귀퉁이에 조그마한 굴뚝 하나가 보인다. 옛 심도직물 공장의 굴뚝 윗부분이다. 강화도는 1970년대까지 대구, 경기 수원과 함께 국내 3대 직물 도시였다. 심도직물을 비롯해 조양방직, 평화직물, 이화직물 등 30여 개의 공장에 노동자만 4,000여 명에 달했다. 직물 산업의 활황에는 노동 착취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강화초등학교 맞은편 강화성당에는 ‘노동사목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심도직물의 노동탄압에 맞서 한국천주교회 주교단은 1968년 2월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익 옹호를 위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한다. 이른바 ‘심도직물 사건’으로 한국 천주교가 노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첫 사례다.
심도직물 굴뚝 바로 옆에는 ‘김상용 순절비’가 비각 안에 보관돼 있다. 병자호란의 아픔을 간직한 유적이다.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넌 청나라 군사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한양을 함락했다. 강화도로 피란 가려던 인조는 길목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했다. 먼저 출발한 후궁과 왕자들은 강화도에 들어갔는데, 이들을 호위한 사람이 바로 김상용이다. 그러나 청나라 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그는 강화산성 남문루에 올라 폭약 더미 위에 불을 붙이고 자결했다. 비각 안에는 증손 창협이 글을 짓고 창집이 글씨를 써 1700년에 세운 것과, 원래의 비문이 마모돼 1817년 다시 세운 2기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해설 투어는 이곳에서 끝나지만, 도로 하나만 건너면 직물로 번성한 도시 강화의 빛과 그림자를 다시 한번 새길 수 있다. 약 450m 떨어진 곳에 소창체험관이 있다. 1930년대에 지은 한옥과 염색공장을 개조해 강화 직물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인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에는 전성기 이 공장에서 사용했던 기기를 설치작품 형식으로 전시하고 있다. 2층은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고, 바로 옆 한옥에는 카페가 들어섰다. 직물공장을 개조한 ‘조양방직’ 카페는 일찌감치 강화의 명물이 됐다. 왁자지껄한 것보다 시골 읍내의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한다면 동광직물 한옥카페가 오히려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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