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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1일 벌어진 두 장면. 정치권이 요즘 정책 이슈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단적으로 보여 줬다. 정부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시할 보건복지부 산하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이날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그간 논의한 내용을 발표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17년 만의 개혁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3대 개혁 과제로 꼽으며 연금 제도 개선을 강조해 왔기에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러나 이날 윤 대통령의 주요 메시지는 '이념 전쟁'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지난달에 이어 '공산전체주의'를 다시 꺼냈다. 자신들을 적으로 규정한 듯한 메시지에 야당과 시민단체는 반발했고, 이념 논쟁이 정국을 뒤덮었다. 연금 개혁의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딘 날 윤 대통령은 자신이 강조해 온 개혁 이슈를 스스로 묻히게 했다.
야당도 다르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한 지 닷새째인 지난 4일 '파시즘'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이날 단식농성장을 찾은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이 이 대표에게 "(윤석열 정부가) 이대로 가면 파시즘"이라고 하자, 이 대표는 "연성 독재로 가는 단계가 된 것 같다"고 동조했다. 똑같이 이념 논쟁으로 맞불을 놓았다.
공산전체주의, 파시즘 등 극단적인 단어가 한꺼번에 나온 건 이례적인데, 8개월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을 의식한 발언이다. 여야의 대화 단절로 갈등이 만연해진 탓도 있겠지만,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강성 지지층을 움직일 자극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경제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고, 국민은 흉악 범죄로 인해 매일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이렇게 한가하게 이념전쟁에 몰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8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수출액은 518억7,000만 달러로 지난해 10월부터 11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했다. 서민금융기관인 상호저축은행들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며 금융기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 달 새 주택담보대출은 2조 원 넘게 급증했다.
국민들의 사회적 공포도 커졌다. 계속된 묻지마 칼부림 사건에 밖을 돌아다니기 무서워진 세상이 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로 먹거리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줄 기미가 없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에 학부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며칠 전 전북 전주시 한 빌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되는 40대 여성이 숨지면서 4세 아이는 세상에 홀로 남게 됐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정치권이 민생 이슈로 격론을 벌여 국민을 안심시켜도 모자란 상황이다.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 정치권이 이를 주도할 의무가 있다. 선거 승리는 정당의 최우선 목표지만, 지금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는 게 더 급하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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