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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도 감동도 없는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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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힘들고 믿기지 않는 일을 접할 때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다’고 한다. 설마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최근 주변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현실을 부정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죽마고우를 만났고, 왼손으로만 운전한다는 택시기사 얘기도 들었다. 예전에는 좀처럼 보지 못한 모습들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현실은 정말로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해진 걸까. 나름 결론을 내보려고 거실에서 tvN 드라마 ‘비밀의 숲’ 마지막 회를 다시 봤다. 권력 지향적이고 부패한 이창준 검사는 밤에는 밀실에서 기업인들과 어울리며 술판을 벌이며 사건을 봐주고, 낮에는 밑바닥까지 추락한 서민들을 가차 없이 처벌한다. 설탕물밖에 먹은 게 없다는 할머니까지 끌고 와 조사하고, 고물을 팔아 번 3,000원이 전재산인 사람까지 절도죄로 구속한다. 여기까지는 현실과 비슷한 측면도 있지만, 드라마에선 반전이 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낀 검사는 자신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비리를 폭로하도록 한다.
드라마를 보고 나니 답답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으로 이동해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검에서 작성한 ‘장모 대응 문건’을 다시 봤다. 대검은 윤 대통령 장모인 최은순씨가 연루된 각종 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부인하는 대응 문건을 작성해 언론에 설명했다. 문건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검찰 내부 정보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장모 비리가 불거졌을 때 검찰 조직의 도움을 받았다는 검사는 본 적이 없기에, 대단히 특별한 문건임은 분명했다.
문건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까지 버젓이 기재돼 있었다. 최씨는 경기 성남시 도촌동 부동산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지난 7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하지만 문건에는 범죄자인 최씨가 ‘피해자’로 명시돼 있었다. 언론에서 ‘가짜뉴스’를 보도하도록 문건을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당시 대검 간부는 법정에 출석해 유감 표시는커녕 당당하게 “검찰 신뢰를 지키기 위해 검토했다”고 말했다.
‘장모 대응 문건’은 국민 세금으로 녹을 먹는 검사들이 국가가 아니라 조직의 수장을 위해 검찰권을 사적으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국가를 위해 일하지 않고 허위사실까지 유포하려고 했으니, 문건 작성에 관여한 이들은 윤석열 정부 용어로 표현하면 '반국가세력'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사형에 처해져야 할 사람들로 분류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내부 징계는커녕 오히려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요직에 등용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5월 1일 신임 검사들을 만나 "상식에 맞는 결정을 하는 게 검사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검찰의 일은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아슬아슬한 길"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말을 종합하면 상식에 맞지 않게 일한 검사는 추락하는 게 이치에 맞지만, 오히려 더 잘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았다는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만 챙긴다는 모순된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이해는 가지만, 감동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결론을 내려야겠다. 가끔 그렇게 보일 때가 있지만, 현실은 결코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지 않다. 현실에선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뿐, 반전도 없고 감동도 없기 때문이다. 그걸 기대하고 싶다면 드라마를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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