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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미고용 부추기는 장애인고용법 바꿔야" 국회 및 전문가들 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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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럽과 일본처럼 정부 및 기업들이 일정 비율로 장애인을 의무 고용하도록 법을 만든 나라다. 장애인이 생계를 유지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려면 일할 권리가 반드시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1990년 제정된 장애인 고용촉진법 및 직업재활법(장애인 고용법)에 따르면 직원 50명 이상인 곳은 전체 직원 대비 일정 비율(공공 3.6%, 민간 3.1%)로 장애인을 의무 고용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직원 100명 이상인 곳은 고용 부담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법 취지와 달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 장애인고용공단 조사에 따르면 의무 대상 기업의 80% 이상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장애인을 1명도 고용하지 않은 기업이 30%나 된다. 특히 대기업의 장애인 미고용이 심각하다.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2.37%로 법적 의무고용률 3.1%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장애인 미고용을 거꾸로 부추기는 법의 맹점을 문제로 꼽는다. 장애인 고용법 제33조 1항과 3항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할 경우 부과하는 고용 부담금 기준이 최저 임금의 60%로 돼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 장애인을 고용해 최저 임금 이상의 월급을 주는 것보다 부담금을 내는 것이 더 적게 든다. 사실상 법이 장애인 고용을 가로막는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7일 국회와 한국일보, 장애인고용확대위원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 고용의 질적 향상과 양적 확대를 위한 장애인 고용법 개정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전혜숙, 신동근, 박정, 임이자, 이수진, 이은주, 최혜영, 김예지 의원을 비롯해 전문가들은 고용 부담금을 최저 임금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인 고용의 양과 질을 늘리기 위한 고용부담금 제도 개편방안'이라는 주제를 발표한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에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한 기업들 명단을 공개한다"며 "이를 망신 주기 명단이라고 부르는데 기업들은 개의치 않아 10년째 명단을 올리는 기업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에서 명단을 공개해도 기업에 타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들의 고용 부담금 납부총액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8,585억 원에 이른다.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을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 주제를 발표한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조만간 고용 부담금이 1조 원에 이를 것"이라며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보다 부담금 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은 점점 더 장애인 고용을 하지 않으려고 하며 장애인의 노동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임 변호사는 "고용 부담금이 낮아 의무고용률을 달성할 의지가 없다고 답한 기업이 54%"라며 "장애인을 고용한 경험이 없는 기업들은 장애인의 생산성이 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등을 꺼려 장애인 고용을 기피한다"고 설명했다.
이 틈을 타고 엉뚱한 브로커가 활개 치기도 한다. 전문가 토론회에 참가한 성희선 서울커리어플러스 센터장은 "기업들에 접근해 장애인 고용 문제를 도와줄 테니 수수료를 요구하는 업체가 30여 곳"이라며 "이들은 장애인 고용 시 1명당 매달 30만, 40만 원씩 수수료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고용 부담금을 기업들의 평균 임금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 연구위원은 "부담금을 기업별 상시 근로자의 평균 임금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에 적극 나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장애인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부담금을 깎아줘 고용의 질도 높여야 한다"며 "중증 발달장애인은 하루 8시간 근무가 어려우니 4시간만 일해도 정규직 고용으로 간주하는 등 장애인 특성에 맞는 고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을 지낸 조종란 서울여대 석좌교수는 "장애인들이 빠르게 고령화하고 중증화되는 점을 감안해 다양한 직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자회사형 사업장이나 여러 기업이 출자하는 표준 사업장 등으로 기업의 직접 고용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성 센터장은 거주지 중심 취업과 장애인 의무 실습제 도입을 건의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은 원거리 출근이 어려우니 집 근처 소상공인에게 취업하도록 하고 대기업이 낸 고용 부담금을 소상공인에게 지원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장애인에게 3개월 의무 실습 기회를 제공하면 장애인의 노동능력을 발견해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세계그룹이 의무 실습제의 좋은 사례다. 성 센터장은 "신세계그룹이 의무 실습제를 도입한 뒤 장애인 고용이 2명에서 40명으로 늘었다"며 "신세계는 이들의 고용기간을 2099년으로 정해 사실상 평생고용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모범적인 장애인 고용 사례로 SK그룹을 들었다. 조 교수는 "SK그룹은 장애인 고용률이 10대 기업 중 가장 낮다는 지적을 받고 최태원 SK 회장이 무조건 고용 확대를 지시해 1년 만에 장애인 고용률을 1.63%에서 의무 기준을 뛰어넘는 3.71%까지 끌어올렸다"며 "최고경영자가 보여준 놀라운 결단의 결과"로 꼽았다.
정부도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 확대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부용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과장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이 저조해 이를 개선할 방안을 살펴볼 것"이라며 "문제는 대기업이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는 데 제도적 걸림돌이 있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혜숙 의원은 "정부와 국회가 장애인을 적극 고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솜방망이 같은 부담금으로는 장애인 미고용이 해결되지 않으니 부담금을 높이고 장애인 특성에 맞는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등의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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