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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정치와 엮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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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공에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국군의 날 행사 때 선보일 축하비행 연습이 한창이다. 한미동맹 70년을 맞아 도심 시가행진도 10년 만에 부활한다. 보기 드문 성대한 축제를 즐길 참이다. ‘대한민국은 깡패’라고 윽박지르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 군의 사기를 높일 중요한 이벤트다.
하지만 속은 타들어 간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아닌데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홍범도 장군의 이력을 들춰내다 선을 넘었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외면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봤다. 정신전력의 핵심 가치인 대적관을 이용해 피아 구분에 집착했다. 그 결과, 항일 공로만 인색하게 인정할 뿐 장군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었다.
이념 논쟁에 불이 붙자 정치권이 맞받아치면서 삽시간에 번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주의와 반국가세력을 척결하라며 연일 매섭게 다그치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는데 국방부가 먼저 발을 뺐다간 항명으로 몰릴 판이다. 호기롭게 선봉대로 나섰다가 꼼짝없이 사이에 끼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시가 발단이었다. 10월 1일이 국군의 날로 적합한지를 군 통수권자가 되물었다.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약이 부각됐다. 육군사관학교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2017년 8월 국방부의 첫 업무보고. 갈등은 그렇게 싹텄다.
탄핵으로 정권이 바뀐 시점이었다. 이의를 제기했다간 자칫 적폐로 비난받을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국군의 날 변경은 끝내 관철하지 못했다. 광복군 창설일(9월 17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해 흐지부지됐다.
홍범도는 달랐다. 독립운동의 잊힌 영웅을 뒤늦게 재조명했다. 육사가 손을 들었다. 2018년 3월 장군의 흉상을 세웠다. 호국간성의 요람이 모처럼 존재감을 뽐냈다. 덕분에 지방으로 밀려날 뻔한 위기에서도 벗어났다. 2021년 장군 유해를 모셔와 오랜 프로젝트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권이 바뀌었다. 육사가 발 빠르게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전임 정부의 흔적을 지우겠다고 총대를 멨다. 국방부는 공산주의 낙인을 찍으며 엄호하는 데 급급했다. 난데없는 흉상 이전을 놓고 국론이 분열됐지만 아랑곳없었다. 철거가 아니라 옮기는 건데 왜 시비를 거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정상적인 토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군과 육사의 족보를 짜 맞추며 순혈주의를 고집하다 자가당착에 빠졌다. 육사 생도들이 경례하도록 놔둘 수 없다면서 학교 밖으로 쫓아낸 공산주의자인데, 해군 장병들은 그의 이름이 붙은 잠수함을 타고 전장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다.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 외압 문제로 가뜩이나 수세에 몰려 있다. 제 코가 석 자라 뭇매를 맞아가며 배짱을 부릴 처지가 못된다. 개각과 대장 인사를 앞두고 공을 세우려 한다는 의혹에 정권 실세 개입설까지 불거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혹여 뉴라이트 사상에 찬동해 군 본연의 임무를 망각했다면 더 큰 문제다.
우리 군의 기틀을 다시 세우겠다고 애써 가지를 쳐내며 소모전을 벌이는 사이 북한 김정은이 4년 만에 국경을 넘었다. 맞서 싸워야 할 ‘주적’의 원흉이 전범국가 러시아의 우두머리와 꿍꿍이를 벌였다. 윤 대통령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괄시해 온 실패한 체제가 거센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실체가 모호한 머릿속의 적에 꽂혀 기운을 뺄 때가 아니다. 내부 총질은 그만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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