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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이념에서 자유롭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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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천재 물리학자의 인생 역정을 영화적 완성도 높게 보여준 수작이다. 독일과의 무기 전쟁으로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과인 원자폭탄이 또 다른 적국인 일본의 두 도시를 황폐화해 종전을 불러왔음은 아이러니다. 전후 미국과 구소련의 군비경쟁과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과거 좌익 의혹이 문제가 된 오펜하이머는 결국 보안 인증 갱신을 포기해야 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가 국가주의와 이념 전쟁의 희생양이 된 모순적 상황들을 놀런은 매우 차분하고 치밀하게 풀어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과학과 이념의 동반과 대립에 있다. 과학은 엄밀한 실험,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논리적인 추론의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여기에서 국가의 일차적인 역할은 과학의 진보를 견고히 지켜주는 것이다. 국가가 인류 미래와 국익을 위한 과학의 활용을 결정하는 책임을 갖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 스스로는 과학자의 성과를 자신의 정치적 성취를 위해 활용하려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전후 수소폭탄 개발의 주도권 선점 경쟁 과정에서도 국가 통치자, 정치인과 과학자들의 야심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늘날 과학의 발전은 실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우주개발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정점을 향하고 있으며, 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대치해 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11년의 일본 도후쿠 쓰나미 12년 후, 일본이 방출한 오염수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뜨거운 감자인 시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중요한 과학적 논쟁에서 정작 과학자는 배제되고, 정치인들이 중심에 서 있다는 데에 있다. 과학적 실험 결과에 기반한 논쟁은 사라진 채, 정치 진영들의 매우 거칠고 원색적인 슬로건만이 거리를 뒤덮고 있다. 이 와중에 전문가 지성은 위축되어 꼬리를 내리고, 집단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함성만 들리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일단 정치적 입장이 정해지면 듣기 싫은 정보에는 귀를 닫고 자신과 같은 생각에만 귀를 기울이는 확증편향을 더욱 확고히 하는 데에 정치권, 언론,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아주 효율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누구 목소리가 더 큰가에 관심이 있을 뿐,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찾기 힘든 것이 유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학자의 전문가 지성은 냉소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더욱 입을 굳게 닫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탈진실' 시대라고 부른다. 진실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의 목소리가 큰가가 중요한 시대다. 사안마다 국민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 지상주의도 문제다. 후쿠시마 오염수 혹은 정제수의 문제는 전 국민 여론조사로 결정될 일이 아니다. 과학자의 정교한 분석과 결론이 여론조사 결과보다 더 존중되어야 한다. 다수가 아니라고 해도 진실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지능정보기술이 인간을 압도하고,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되어 질병의 완전한 극복이 가능한 시대를 눈앞에 둔 과학기술 시대에 정치가 할 일은 과학을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과학의 성과를 인류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포럼의 장에 과학자와 정치인이 함께 등단해서 과학적 연구결과를 겸허하고 차분하게 살펴보고 숙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생각 없는 과학기술 진보는 큰 혼란을 낳는다. 그러나 과학에 이념이 개입하는 정치과잉 시대는 더 큰 파국을 불러온다. 과학의 성과에 대한 지극히 냉정한 윤리적 성찰과 판단이 과학기술 진보가 불러올 수도 있는 재앙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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