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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제일 싸다

입력
2023.09.06 16:00
수정
2023.09.06 16:4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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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점 주인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초콜릿 판매 가격을 올리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로 시름에 잠긴 가운데 당국은 지난 14일 공식 달러 환율을 22.45% 올리고(페소화 평가절하), 기준금리를 하루 사이에 21%포인트 인상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점 주인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초콜릿 판매 가격을 올리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로 시름에 잠긴 가운데 당국은 지난 14일 공식 달러 환율을 22.45% 올리고(페소화 평가절하), 기준금리를 하루 사이에 21%포인트 인상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통상 각국 중앙은행은 0.25%포인트 단위로 금리를 올린다. 과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정형화시킨 방식이다. 아기가 아장아장 걷듯 조금씩 금리를 조정한다는 뜻에서 ‘베이비스텝’이란 용어가 붙었다. 이보다 더 낮은 폭의 금리 조정은 없다. 0.5%포인트씩 올리면 ‘빅스텝’, 0.75%포인트를 올리면 ‘자이언트스텝’, 그리고 1%포인트를 인상하면 ‘울트라스텝’이라는 표현을 쓴다.

□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연 118%다. 우리나라(3.5%)나 미국(5.25~5.50%) 등 다른 나라와는 비교조차 안 된다. 지난달 인상폭은 무려 21%포인트였다. 마땅히 표현할 방법이 없다. ‘빅자이언트울트라스텝(?)’쯤이라고 해두자. 기준금리를 올리면 당연히 시중금리도 인상된다. 은행에 1만 페소를 맡기면 1년 뒤 2만 페소를 훌쩍 넘는 돈을 돌려준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페소를 들고 은행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월급을 받으면 달려가는 곳은 마트다. 너도나도 생필품을 산다. 하루라도 일찍 사는 것이 가장 싸다고 믿어서다. 그도 그럴 것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15%(6월)다. 한 편의점주는 로이터통신에 “아이스크림 도매가가 2주 만에 두 배 뛰었다. 매일매일 가격을 올려야 할 판”이라고 했다. 그러니 아무리 금리가 높아도 은행에 돈을 맡기는 건 손해다. 살인적 물가에도 페소 가치가 휴지조각이니 국경을 맞댄 우루과이 주민들은 아르헨티나로 몰려간다. 달러화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는 아르헨티나가 ‘쇼핑 천국’이다.

□ 요즘 우리도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다지만, 그저 남미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긴 하다. 그런데 국내에도 '오늘이 제일 싸다’는 믿음이 굳건한 분야가 있다. 부동산이다. 끊임 없는 집값 바닥론 속에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못 산다는 불안감이 ‘영끌족’을 자극한다. 지금 다시 그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부동산 불패’ 시그널을 주는 게 문제다. 국민들은 정부가 ‘이번이 마지막’ ‘매진 임박’을 외치는 홈쇼핑 쇼호스트와 닮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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