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공급 늘려야 하는데"... 실거주 의무 폐지 물 건너가나

입력
2023.09.07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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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넘게 폐지안 국회 표류
야당 반대 거세 국회 통과 난망
"수도권 4.4만 가구 혼란"

8월 31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연합뉴스

8월 31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연합뉴스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긴 하는 건가요?"

요즘 부동산 인터넷 커뮤니티엔 이런 질문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정부가 연초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관련 법이 반년 넘게 지연되자 시행 여부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뛰는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택 공급 확대에 열을 올리는 정부도 이렇다 할 묘안이 없는 상황이다.

6일 국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달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부동산 규제 완화 관련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과 공공재개발사업 일반분양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과연 이번엔 소위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가 가장 관심사다.

현재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등엔 2~5년의 실거주 의무 규정이 적용된다. 정부는 연초 1·3대책에서 실거주 의무 규정을 폐지하고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을 최대 10년에서 3년으로 줄이기로 발표했고, 지금은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전매 규제만 완화(4월)한 상태다.

이 때문에 청약 당첨 후 입주를 기다리는 수도권 단지 66곳, 4만4,000여 가구의 수요자(2021년 2월 이후 분양)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거주 의무 탓에 분양권을 팔 수도 없고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분양한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은 올해 말부터 분양권을 팔 수 있지만 현재 거주 의무가 살아 있는 만큼 전매할 수 없다.

"거주 의무가 신축 전월세 공급 막아"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정부는 올 하반기 법 개정에 사활을 건다는 입장이다. 최근 들어 서울·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다시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울 주요 지역에선 전보다 20% 넘는 금액에 전세 계약을 갱신한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아파트 전세 수요는 늘었는데 공급은 연초보다 45%가량 줄어든 탓이다. 전셋값 상승은 전세사기를 부른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등 여러 부작용을 양산한다. 거주 의무 폐지로 신축 아파트 전·월세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야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매년 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수도권 공공택지 물량도 4만 가구로 추산된다. 더구나 주택 공급이 줄어들 거라는 우려에 직접 청약하는 대신 1~2년 전 분양된 아파트 입주권을 찾는 수요가 많아졌는데, 거주 의무 폐지안이 좌초되면 분양권 거래도 막힌다.

그럼에도 거주 의무 폐지안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야당 반대가 거세다. 거주 의무가 사라지면 갭투자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규제 완화로 최근 집값 상승이 심상치 않다는 점도 야당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대목이다. 국토위 법안소위(12명)는 야당 의원이 7명으로 훨씬 많아 야당이 반대하면 법 통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국토부는 이달 중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신속한 주택 공급을 기대할 수 있는 거주 의무 폐지안 등이 시행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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