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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 용어 지운 한국 교육… '성'이란 말 안 쓰고 성교육 해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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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2월은 색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2월을 두어 번 견딘 뒤에야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왜 2월에 열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색이 없는 그 시간에 색을 부여하려는 베를린 사람들의 노력. 그게 내가 이해한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존재 이유였다.
‘제너레이션(Generation)’ 섹션에 늘 눈길이 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제너레이션 섹션은 아동과 청소년을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경쟁 부문이다. 단편영화들은 만 11세에서 14세의 청소년들이 직접 심사위원이 되어 수상작을 선정한다. 그래서인지 상영관은 존재 자체로 그만의 색과 빛을 뿜어내는 자기 또래가 주인공인 영화들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아동과 청소년 관객들로 붐비곤 했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들이 몹시도 논쟁적이고 진지한 소재와 질문을 다룬다는 사실이다. 흔히 생각하는 ‘아이들용 영화’가 아니라 아동과 청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고민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프리다의 그해 여름(Summer 1993)’은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 플러스’ 섹션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현재 대부분의 OTT 서비스에서 시청 가능하다.)
이 영화는 여섯 살 프리다가 엄마와 조부모와 함께 살던 바르셀로나를 떠나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던 외삼촌 가족과 보낸 1993년 여름을 그린다. 투병 중이었던 엄마가 죽자 엄마의 남동생인 외삼촌 가족에게 보내진 것. 웬일인지 프리다는 엄마의 마지막도 함께하지 못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프리다의 엄마가 에이즈(AIDS)로 사망했으며, 조부모가 이 사실을 프리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보수적인 조부모는 딸이 에이즈로 사망한 사실을 쉬쉬하고 손녀를 지방에 살고 있는 아들네로 보내며 상황을 무마하고자 한 것이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알지만 왜 죽었는지, 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 사실을 숨기며 자신을 외삼촌네로 보내 버렸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프리다는 계속 엉뚱한 행동으로 사고를 친다. 언뜻 보면 자신을 받아들여준 외삼촌 가족에게 ‘민폐’나 끼치는 프리다의 행동은 기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거부하는 고통의 몸짓이다. 영화는 외삼촌과 외숙모, 딸 아나로 구성된 가족이 프리다와 갈등과 화해를 거쳐 마침내 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스페인 시골의 여름을 그린 모든 장면이 눈부시지만 내가 특히 흥미롭게 본 장면은 엄마가 왜 죽었는지를 묻는 프리다에게 외숙모 마르가가 에이즈에 대해 설명해주는 장면이었다. 대사의 일부를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엄마는) 바이러스 때문에 돌아가셨어. 그게 뭔지 알아?... 몸속에 있던 아주 작은 동물이 병을 막을 힘을 뺏어간 거야. 바이러스는 더욱 힘이 세졌고 엄마 몸이 맞서 싸우지 못해 돌아가셨단다... 선생님도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새로 발견된 바이러스라 다들 아는 게 별로 없었어. 치료법을 모르셨단다. 의사 선생님들도 최선을 다하셨지만...” 그 어떤 도덕적 평가도 내리지 않은 ‘과학적’ 설명이라 할 만하다. 이후 프리다는 엄마의 죽음을 납득하고 엄마를 마음으로 보내주게 된다.
질병으로 한 시대를 표현한다면 1980년대는 에이즈의 시대였다. 미국의 문화비평가 수전 손태그가 표현한 바, 에이즈는 ‘은유로서의 질병’의 위력을 입증한 사례였다. 에이즈가 에이즈라는 이름을 갖기 전 그것은 게이 병(gay disease)이라고 불렸다. 유행 초기 남성 동성애자들에게서 주로 발견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보호되지 않은 성적 접촉을 통해 주로 전염되기에 당연히 동성애자들만 걸리는 병이 아니라는 ‘과학적’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에이즈는 오랫동안 신이 동성애를 벌한다는 강력한 믿음의 근거가 되었다. 가톨릭 문화와 위계주의가 강했던 스페인에서도 이러한 믿음은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80년대 스페인은 오랜 프랑코 독재로부터 벗어나 민주 사회로 이행했지만 독재를 지지한 가톨릭 보수주의자들과 민주화를 염원한 젊은 세대 간 극심한 갈등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때 새로 발견된 ‘게이 병’에 필요한 보건의료적 조치를 취하자는, 사실에 근거한 주장은 쉽게 무시되었다. 이는 스페인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에이즈 사망률을 기록하는 원인이 된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상류층이자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 조부모와 부모와 도시를 떠난 민주화 세대인 외삼촌 가족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감독 자신의 경험을 그린 이 영화에서 조부모의 신앙에 근거한 보수적 태도는 프리다의 고통을 가중시키지만 외숙모의 사실에 근거한 담담한 태도는 프리다가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제너레이션 섹션 상영 영화들은 아동, 청소년들의 교육 교재로도 적극 권장된다. 학교 수업과 각종 동아리 활동에서 이 영화들은 역사, 사회, 가족과 인간관계, 젠더와 섹슈얼리티 관련 현안과 질문을 토론하는 주요 텍스트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가르치며 느낀 바는 초, 중, 고교 시절부터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자신의 감상을 격려받으며 토론하는 훈련을 한 독일의 대학생들은 타인의 눈치를 살핀 ‘정답’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질문’을 제기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젠더(gender)와 섹슈얼리티(sexuality)는 성교육 시간에만 다루는 소재가 아니다. ‘사회적 남성과 여성의 형성’을 뜻하는 젠더와 ‘우리가 성이라고 부르고 상상하는 모든 것의 사회적 구성’을 뜻하는 섹슈얼리티는 그것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일종의 프리즘이다. 그러니 성교육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와 사회를 다루는 모든 인문 사회과학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당연히 전제된 기본 개념이다. 자연과학에서도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오래전 등장했고 말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작년 12월,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심의하면서 교육부가 지운 ‘성평등’, ‘재생산권’, ‘성소수자’ 용어에 ‘섹슈얼리티’ 용어까지 지워 의결했다. 섹슈얼리티가 성인데 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성교육을 해야 하는 난제가 학교 현장에 던져진 것이다. 이쯤 되면 남학생들은 축구하라고 내보내고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생리대 깔끔하게 처리하기’를 가르쳤던 내 어린 시절의 ‘성교육’에 비해 무엇이 나아졌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심의 및 의결은 신호탄이었을까? 성평등 및 성교육 강사들을 대상으로 한 일부 보수 및 학부모 단체들의 집단 압력이 날이 갈수록 세를 불리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단체들이 공공도서관에 성평등 및 성교육 관련 도서의 폐기를 요청하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넣고 있다. 일상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집요한 민원에 몇몇 도서관은 해당 도서들의 열람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성평등을 고민하는 이들은 절멸해야 할 새로운 ‘빨갱이’로 지목된 듯하다. 우리의 학교와 도서관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동과 청소년이 성장 과정에 맞춰 제대로 된 성 관련 정보를 습득하고, 학교 안팎에서 마주치고 경험하는 성을 통한 권력관계를 토론하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성적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한국 사회. 이런 사회에서 n번방 사건이 발생했고 사람들의 경악을 비웃기라도 하듯 벗방(벗는 방송)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최근 한국일보에서도 기획 “벼랑 끝 ‘미신고 아기들’”을 통해 조명한 영아유기와 영아살해의 현실은 어떠한가. 피의자 대부분이 10대와 20대, 그리고 여성이다.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과 청년들이 임신을 하고 이 책임은 전적으로 여성에게 돌아가는 현실을 보여준다. 영아살해를 무겁게 처벌하려는 최근의 경향은 저출생 현상의 가속화와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부장적 성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
이런 사건들이 바로 성교육, 나아가 역사와 사회, 과학 수업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성을 통해 한국 사회와 인류 문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동과 청소년의 시각을 통해 본 사회와 성을 함께 고민하면서 그것을 질문으로 전환시키고 필요한 정보는 담백하게 전달하는 (성)교육. 지금 필요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미래의 시민들은 그렇게 길러질 터이다.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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