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들아, 내가 언제 동상 세워 달라 했나"...42년간 홍범도 연구한 독립 후손의 한 맺힌 시

입력
2023.09.01 11:30
수정
2023.09.0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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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42년 연구한 이동순 영남대 교수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범도 장군의 절규' 올려

2021년 광복절 당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유해가 수습돼 운구 의식을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광복절 당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유해가 수습돼 운구 의식을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가 시를 지어 비판했다. 이 명예교수는 독립투사 이명균 선생의 후손으로 42년간 홍범도 장군을 연구해 왔다.

이 교수는 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홍범도 장군의 절규'라는 제목의 자작시를 올렸다. 홍 장군이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지만 후손들이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하며 흉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실을 봤다면 느꼈을 심경을 시로 정리했다.

시는 "그토록 오매불망 나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다"는 통탄으로 시작한다. 이어 "그래도 그냥 마음 붙이고 하루하루 견디며 지내려 했건만 오늘은 뜬금없이 내 동상을 둘러파서 옮긴다고 저토록 요란일세"라고 이어진다.

이어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라고 했다.

구소련(현재 러시아) 지역인 카자흐스탄으로 갔다는 이유로 공산주의 비판을 받은 데 대해 "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놈의 땅이 되었나" "해방조국은 허울뿐, 어딜 가나 왜놈들의 비위를 맞추는 나라 더 이상 견딜 수 없네"라고 토로했다. 시는 "내 뼈를 다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보내주게. 나 기다리는 고려인들께 가려네"라며 끝난다. 정부는 2021년 광복절에 카자흐스탄에서 홍 장군의 유해를 모셔와 대전 현충원에 봉안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 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홍 장군 흉상 육사 이전 논란과 관련해 "흉상 전체를 아예 녹여서 땅에 묻어버리시거나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며 "참 대단한 분을 카자흐스탄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아주 정말 어렵게 귀국한 어른을 모욕을 주고 땅에 팽개치고 손상을 준다면 우리 후손들로서 아무리 막돼먹었다 하더라도 있을 수가 없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1980년대부터 홍범도 장군의 생애와 행적을 연구해온 이 교수는 2003년 10권 분량의 장편 서사시 '홍범도'를 발표했다. 올해 3월에는 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를 출간했다. 이 책에 따르면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홍 장군은 제대 후 1937년 스탈린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머물렀다. 제대 후 고령이었던 그는 이 지역에서 농부, 경비원,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다 생을 마감했다.


다음은 이 교수가 쓴 시 전문.

홍범도 장군의 절규


그토록 오매불망 나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

그래도 마음 붙이고 내 고향 땅이라 여겼건만

날마다 나를 비웃고 욕하는 곳 이곳은 아닐세 전혀 아닐세

왜 나를 친일매국노 밑에 묻었는가

그놈은 내 무덤 위에서 종일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하네 어찌 국립묘지에 그런 놈들이 있는가

그래도 그냥 마음 붙이고 하루하루 견디며 지내려 했건만

오늘은 뜬금없이 내 동상을 둘러파서 옮긴다고 저토록 요란일세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

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을 왔네

나, 지금 당장 보내주게 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게

나, 어서 되돌아가고 싶네 그곳도 연해주에 머물다가 함부로 강제이주되어 끌려와 살던 남의 나라 낯선 땅이지만
나, 거기로 돌아가려네

이런 수모와 멸시 당하면서나, 더 이상 여기 있고싶지 않네

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놈의 땅이 되었나 해방조국은 허울뿐 어딜 가나 왜놈들로 넘쳐나네

언제나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나라

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네 내 동상을 창고에 가두지 말고 내 뼈를 다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보내주게나 기다리는 고려인들께 가려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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