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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기꺼이 부대끼려 해요"... 햇빛 속으로 나선 은둔형 외톨이들

입력
2023.09.02 04:30
1면

리커버리센터 내 은둔형 외톨이 동행취재
외톨이들 함께 모여 요리, 운동, 공연 준비
각자 아픈 사정에도 사회 복귀 위해 노력
"범죄자와 외톨이 달라.. 편견 갖지 말아야"

은둔형 외톨이 유성준(가명·오른쪽)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성북구 성북천을 따라 뛰어가고 있다. 이서현 기자

은둔형 외톨이 유성준(가명·오른쪽)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성북구 성북천을 따라 뛰어가고 있다. 이서현 기자

"자, 속도 조금만 올리자!"

비가 내린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서울 성북천 공원을 따라 달리던 8명의 청년들이 코치의 말에 뛰는 속도를 높였다. 이들은 고립·은둔 청년 지원단체인 '푸른고래 청년 리커버리 센터'에서 생활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이다.

그 중 유성훈(가명·33)씨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모자를 푹 눌러썼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뛰기만 하던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5㎞씩 달린다는 유씨. 은둔형 외톨이라더니, 놀랍게도 그가 헉헉대며 따라 뛰는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괘... 괜찮아요? 운동을... 안 하다 뛰면... 힘들어요." 느린 말투지만 배려가 담겼다. 외톨이 청년이 먼저 웃었다.

"우리가 그렇게 위험해보이나요?"

은둔형 외톨이. 3~6개월간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들을 향해, 세상이 이름 붙인 말이다. 다만 왜 그들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라, 종종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칼부림이나 살인예고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때가 더 그렇다. 그런 사건에서 잡힌 피의자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종종 있다보니, 사람들은 은둔 외톨이라면 모두 '잠재적 범죄자' 아니냐고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외톨이들과 한번이라도 지내본 이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국일보는 30일과 31일 이틀간 이들 외톨이와 동행하며, 그런 시선이 '편견'이라는 점을 직접 확인했다.

지난달 30일 은둔형 외톨이 유성준(가명·오른쪽)씨가 서울 성북구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내에서 공연준비를 위해 기타를 연습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지난달 30일 은둔형 외톨이 유성준(가명·오른쪽)씨가 서울 성북구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내에서 공연준비를 위해 기타를 연습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유씨 일상은 오전 10시 다른 크루원(은둔형 외톨이들이 서로를 지칭하는 말)들과 함께 센터로 향하며 시작된다. 이곳에서 크루원들은 함께 요리, 운동, 그림,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달리기를 마친 이날, 유씨는 기타를 들고 와 동영상을 보며 '나의 옛날 이야기' 연주 연습에 몰두했다. 2주 뒤 예정된 공연 준비를 위해서다. 틀릴 때마다 "아직 잘... 못해요"라고 쑥쓰러워하는 유씨는 별로 남들과 다를 게 없는 수줍은 청년이다.

유씨가 햇빛 대신 골방을 택한 건 타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시작은 사소했다. 중학교 입학 때, 유씨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친구들과 먹으라"며 샌드위치를 싸줬다고 한다. 처음엔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의 요구가 과해졌다. "오늘 왜 샌드위치 안가져왔냐?" "내일은 다른 맛 샌드위치로 준비해라." 말을 듣지 않으면 폭행과 욕설이 이어졌다. 이렇게 따돌림을 당한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왕따'로 찍혔고, 그 뒤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서울 성북구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내에 비치된 식단표. 센터 내 은둔형외톨이들이 직접 요리한다. 이서현 기자

서울 성북구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내에 비치된 식단표. 센터 내 은둔형외톨이들이 직접 요리한다. 이서현 기자

학교를 벗어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군대에선 상급자 강요에 못 이겨 밤에 밖으로 나갔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 힘들게 취업한 회사에선 업무 실수를 빌미로 팀장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지속적인 폭언에 시달렸다. 회사 동료들은 유씨를 위로했지만, 정작 그가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자 입을 닫았다. 코로나 때 회사사정으로 해고를 당한 뒤, 계약직으로 일하던 지난해 12월에는 술 취한 행인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원망스러웠어요." 유씨는 우울증이 생겨 집밖을 나가지 않았고, 말을 더듬는 증상도 시작됐다. 자취방에 곰팡이가 피어올랐지만, 6개월 동안 인터넷과 한 몸이 된 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당시 그는 '이러다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7월 서울시에서 고립 청년 지원제도를 알리는 문자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

사회적 비용 7.5조원... 범죄자와 달라

서울 성북구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내에 비치된 게시글. 이서현 기자

서울 성북구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내에 비치된 게시글. 이서현 기자

유씨같은 외톨이는 남들보다 유독 정신력이 약하거나 외부 충격에 취약한 사람일까? 아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이미 흔하다. 청년재단 연구에 따르면, 전국 고립청년 인구는 34만 명으로 추산된다. 재단은 이들을 방치할 경우, 매년 7조 5,0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비용, 정책비용, 건강비용 등을 합산한 결과다.

은둔형 외톨이 대다수는 유씨처럼 학교·직장에서의 부적응, 대인관계 트라우마 때문에 세상을 피해 숨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갖고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은둔형 범죄자'와 '외톨이'는 분명하게 분리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고립청년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안으로 끌어안는 성격을 지닌다"며 "범죄를 저지를 힘조차 없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송경준씨가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위해 쌀을 씻고 있다. 이서현 기자

지난달 31일 송경준씨가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위해 쌀을 씻고 있다. 이서현 기자

정상적인 사회 복귀를 원한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범죄자와 구별된다. 31일 오전 무료급식소 '바하밥집'으로 향한 송경준(27)씨가 그 예다. 송씨도 은둔형 외톨이였지만 지난해 말 센터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아직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복싱을 배우는 등 사회로 나오려는 시도를 계속 중이다. 최근엔 '바하밥집'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노숙자·독거노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이날도 송씨는 70인분의 카레라이스를 준비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송씨도 학교폭력 피해자다. 중학교 때부터 괴롭힘에 시달렸고, 고등학교를 가자마자 자퇴를 결심했다. 부모님과 마찰도 적잖았다. 부모님은 송씨를 학교까지 데리고 가 "당장 학교를 가라"며 송씨 등을 떠밀기도 했다. 이후 송씨는 사람을 만날 때 불안감에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고, 대인기피증 진단을 받아 7년간 집에서만 생활했다.

지난달 31일 송경준씨가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지난달 31일 송경준씨가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그러다 우울증 커뮤니티에 올라온 센터 홍보글을 보게 됐다. 송씨는 "그때 인생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연락을 했다"고 했다. 물론 센터에 가서도 적응은 쉽지 않았다. 부엌 구석에 쭈그려 앉아 홀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코치들이 지속적으로 용기를 북돋아준 덕에 원활히 적응할 수 있었고, 사회복지사가 돼 또 다른 은둔형 외톨이들을 돕겠다는 꿈도 키우게 됐다.

세상으로 나오려는 외톨이들을 가로막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의 편견이다. '은둔'이라는 하나의 특성만 가지고, 외톨이 전체를 예비 범죄자로 바라보려는 그 삐딱한 시선 말이다.

이들도 그 편견을 알고 있다. 송씨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 그 사람들과 저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건... 너무 답답한 거 같아요. 잘 이해가 안가요. 기자님 보기에도 제가 그렇게... 위험한 사람... 같나요?"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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