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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민심과 ‘발끈 투표’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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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다 보면 ‘발끈 러시’를 할 때가 있다. 패색이 짙어졌을 때 병사는 물론 전투력 약한 일꾼까지 총동원하는 공격으로, 자포자기 상황에서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가하는 최후 일격을 뜻한다. 게임 대회에서는 간혹 이런 공격이 성공해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경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실패한다. 극약처방을 받쳐 줄 기초체력이 부실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럴 땐 겨우겨우 버티며 자원을 모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8월 13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예비 대선 결과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발끈 러시’ 같은 것이었다. 암담한 경제 상황에 분노한 아르헨티나 국민은 이 선거에서 기존 정치세력이 아닌 자유진보당의 하비에르 밀레이 의원을 1위로 선출했다. 하원 의석 2석에 불과한 소수 정당 후보가 10월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부상한 것이다. 그에 투표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심정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은 110%를 넘고 국민 10명 중 4명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부패하거나 무능한 정치인들은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데도 책임은커녕 재집권을 꿈꾸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 다시 권력을 잡을 바엔 체제를 뒤엎는 인물이 낫다는 심정으로 ‘발끈’하며 밀레이에게 표를 주었을 것이다.
밀레이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지만 사실 그간의 ‘트럼프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그의 공약 중에는 공공기관 민영화, 낙태죄 부활 등 기존 우파 정치인이 으레 주장했던 공약도 있지만 어떤 건 상상을 초월한다. 중앙은행 폐쇄와 페소화의 미 달러화 대체, 장기 매매 합법화 같은 공약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극우 포퓰리스트라기보다 기인(畸人)에 가깝다.
집권 세력에 실망해 선거에서 그 상대방에게 표를 주는 ‘분노 투표’는 흔히 볼 수 있는 투표 행태다. 우리나라 선거의 단골 메뉴인 ‘정권심판론’이 대표 사례다. 여당이 싫어서 야당을 찍는다든지 진보가 싫어서 보수를 찍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으로 대두되는 선거 결과의 유형은 조금 다르다. 그 사회가 지금까지 용인해 오던 선을 넘어서고 있는 이유에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보다도 긴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것은 기본,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스웨덴에서조차 신나치주의에 뿌리를 둔 스웨덴민주당이 약진하는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우리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기성 정치에 실망한 국민이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행하는 ‘발끈 투표’는 기인들의 출현을 초래한다. 아웃사이더였던 이들은 무능한 정치를 넘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국가 시스템과 사회통념마저 뒤흔들고자 한다. 그들은 분명 새로운 세계를 열 테지만 그 세계가 멋진 신세계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점에서 밀레이는 똑같이 트럼프로 비유될지언정 수십 년 정치를 해온, 그래서 예측할 수 있었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보다 위험한 인물이다. 백번 양보해 ‘발끈 투표’로 선출된 인물이 유능하고 매력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나라는 대통령 혼자 이끄는 게 아니다. 대개 극단적 비주류는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아서 주변에 괜찮은 인물이 머물기 어렵다. 그의 주변은 ‘한 방에 역전’을 염원하는 3류 정치인들로 채워진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기대하긴 어렵다.
‘발끈 투표’가 부르는 기인들의 등장은 남의 일이 아니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는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1.07%를 기록, 3위를 차지했다. 지난 대선 기간에는 한때나마 여론조사에서 심상정‧안철수 후보에 앞선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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