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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부시장 "동물원처럼 보여선 안돼…관광객 '레벨' 높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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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돈을 많이 쓸 수 있고, 주민의 삶을 훼방 놓지 않는 수준 높은 관광객을 끌어와야 합니다.
조르디 발스 바르셀로나 제4경제부시장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매년 2,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대표적인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도시다. 바르셀로나 어디를 가든 배낭을 짊어진 관광객을 찾을 수 있고, 거친 돌바닥에 부딪히는 캐리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음과 쓰레기, 교통 체증과 사생활 침해 문제로 주민들과 관광객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일도 다반사다. 현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여름철엔 밤마다 시장 바닥에 누워있는 기분"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8월 17일 바르셀로나 시청에서 만난 조르디 발스 제4경제부시장에게 오버투어리즘 해법에 대해 묻자 "관광객 레벨(수준)을 바꿔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관광객을 골라 받겠다'는 의미로도 들릴 수 있는 얘기지만, 바르셀로나 관광 정책을 총괄하는 그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관광객의 레벨을 바꾸고 싶다는 게 무슨 말일까. 발스 부시장은 "특정 관광객만 골라 받겠다는 말이 아니다"라면서 "수준 높은 관광객이 계속 들어오도록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수준 높은 관광객'은 돈을 많이 써서 지역 경제와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관광객이다.
바르셀로나는 주변 국가에서 값싼 비행기 티켓을 끊고 들어와서 낮에는 관광지를 둘러보고 밤에는 술에 취해 말썽을 부린 뒤 떠나버리는 관광객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시 전체가 중세도시의 매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눈으로 보는 관광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 것.
발스 부시장은 관광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키워드로 ①경제효과가 큰 관광 산업 육성 ②주민 친화형 관광 개발 ③싸구려 관광 금지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눈으로만 보고 떠나는 관광의 시간은 끝났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은 대성당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중세 건물을 '관람'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발스 부시장은 "문화적 유산을 토대로 관광 산업의 덩치는 키웠지만 한계도 뚜렷했다"며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관광을 키우는 등 새로운 분야를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MICE 관광은 현지에서 행사 준비를 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제효과를 유발하면서 관광객의 개별 소비까지 유인하는 효과가 있다. 발스 부시장은 "한국과 미국 등의 여러 기업과 협력을 넓혀가는 이유도 바르셀로나 관광 산업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며 "국제 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한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시내 호텔의 침대 수는 약 700개였는데, 올해는 7만6,000개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숙박용 아파트나 에어비앤비 등 '공유 숙박'도 4,000개에서 5만 개로 폭증했다.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주민들은 밀려나고 상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나의 도시가 아니다"라는 인식도 커졌다.
바르셀로나시는 아무리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도 주민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관광 정책을 주민 친화형으로 전환했다. 발스 부시장은 "바르셀로나의 정체성과 매력을 유지하려면 주민들이 도시를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며 "관광지는 동물원처럼 보여선 안 되며, 사람이 사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시는 주민들 의견을 관광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시의회와 주민회, 상인회가 정기적으로 모여 관광 정책과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 발스 부시장은 "호텔세를 올릴지 말지, 물가를 어느 수준으로 유지할지, 관광객들의 질서 유지를 어떻게 할지 등 모든 분야에서 주민들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싸구려 관광을 막는 것도 중요한 정책 포인트다. 싸구려 관광이 횡행할 경우, 내부 경쟁으로 계속해서 도시의 가치와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올해 4월 바르셀로나는 호텔에 숙박할 경우 내야 하는 관광세를 2.75유로(약 3,700원)로 인상했고 주민들이 물이나 식료품, 식당 음식 가격 등을 일정 수준 이하로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관광객을 등치는 행태도 문제지만,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관광객을 끌어와 도시의 격을 낮추진 않겠다는 의지다. 발스 부시장은 "관광객의 수, 관광의 양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관광의 질을 향상 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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