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 따라 달라졌다… 육사의 홍범도 흉상 뒤집기

입력
2023.08.29 18:00
수정
2023.08.2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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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스1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스1

육군사관학교(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놓고 군과 정치권이 격랑에 빠졌다. 육사 측은 홍 장군의 소련 공산주의 세력과의 연관성을 거론하며 공산주의 이력을 가진 인물을 교내에서는 기념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흉상을 설치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육사가 5년 만에 입장을 뒤집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장교 양성의 산실인 육사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전임 정부 역사 지우기에 선봉으로 나섰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홍 장군 흉상은 2018년 3월 육사 충무관 앞에 설치됐다. 육사 생도들이 수업을 듣는 건물이다. 육사는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까지 5명의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만들었다. 흉상에는 장병들이 사용했던 실탄피 300㎏(5.56㎜ 보통탄 5만 발 분량)이 사용됐고, 표지석 상단에는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라는 독립군 ‘압록강행진곡’ 가사를 새겨 넣었다.

육사 측은 당시 홍 장군 등 흉상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홍보에 공을 들였다. 김완태 당시 교장은 홍 장군 등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 전쟁 영웅들”이라고 칭송한 데 이어 “독립군·광복군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육사 스스로 독립군과 광복군, 나아가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국군의 뿌리로 인정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흉상 공개 직후 육사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을 열고 생도 1,100여 명이 참가한 분열의식을 치르며 예우를 다했다. 이를 놓고 육사 내에서는 일부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뿐이었다. 같은 해 2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육사 75기 졸업식에 보낸 친서에서 “육사의 역사적 뿌리는 100여 년 전 신흥무관학교에 이른다”며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흉상을 설치한 육사 본래의 취지와 상관없이 "정치적 입김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육사가 5년 전 입장을 180도 뒤집었다는 점이다. 홍 장군 흉상을 학교 밖으로 옮기겠다고 밝힌 이유가 석연치 않다. 소련 공산주의 세력과의 연관성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하지만, 이는 흉상 설치 당시에도 고려한 부분이다. 특히 홍 장군의 경우 문 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에 안치돼 있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며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단순한 공산주의 참여 이력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실제 야당은 "(흉상 이전) 뒤에는 국방부, 보훈부, 대통령실이 있다고 보여진다"(김병주 민주당 의원)며 맹공을 펴고 있다. 흉상을 설치할 때나 지금이나 홍범도 장군의 행적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정권에 따라 평가가 정반대로 바뀐 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권영호 육사교장(중장)과 현 정부 실세의 친분을 들어 10월 군 대장 인사를 앞둔 사전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은) 지금까지 홍 장군과 관련한 생각을 이야기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남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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