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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와 갑질, 그 사이

입력
2023.08.26 00:00
22면
추모객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고인이 된 서이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애도하고 있다. 코리아타임스

추모객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고인이 된 서이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애도하고 있다. 코리아타임스

교사의 아동학대인가, 학부모 갑질인가? 최근 공교육을 둘러싼 논란이 연일 뜨거운 감자다. 지난 7월 서울 서이초 교사가 교내에서 자살했고 이 죽음이 학부모 민원 때문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고인이 학교에서 자살했고 자살 직전 민원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교사들의 시위가 발생했다. 단지 이 한 건뿐만 아니라 많은 교사들이 수시로 학부모 민원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교사의 잘못인지, 학부모의 교권 침해인지는 케이스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왜 이런 논쟁이 계속 벌어지는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학생인권조례가 보장하는 학생 인권과 교권의 괴리 때문일 수 있다. 현행 조례는 아동학대에 대해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지만 교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는 미비하다. 지금 주류 학부모인 1980년대생이 학창 시절 권위주의적 교사를 만났던 경험 때문이거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보편화가 불러온 현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의 '은사' 관념이 희미해지고 학부모와 교사 관계도 '서비스 구매자'와 '제공자' 관점으로 변모했을 가능성이 있다.

세부적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근본적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한국사회 전반적인 신뢰 문제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유독 학부모가 되면 갑질을 하거나 교사들이 유달리 믿음이 안 가는 집단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전체적으로 사회 신뢰가 낮다. 학교는 낮은 신뢰가 불러오는 문제점이 드러나기 쉬운 환경이기에 화제가 되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167개국 중 107위로,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편"이다.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학부모들이 교사도 믿지 못한다.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서 인정하고 그가 자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적절한 지도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사도 학부모를 못 믿는다. 언제 고소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학생을 지도해야 할 상황이 생겨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비단 교사와 학부모 관계만 그러한가. 한국인은 사법시스템도 정부도 믿지 않는다. 역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법시스템은 신뢰도가 155위, 정부는 111위로 매우 낮은 수준에 그쳤다. 개인 간 대인신뢰도도 낮다. 통계청이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1 보고서'에 따르면 대인신뢰도는 2022년 54%로 2013년의 72%에서 크게 감소했다.

낮은 신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경제성장을 방해하고 사회 통합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상대를 믿지 못하면 협력하기가 어렵고 검증을 위한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피해는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현실인 것 같다. 교사들은 언제 민원 당할지 모르니 학생들이 문제 행동을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훈육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피해는 결국 같은 학급의 학생들이 받을 것이다. 시민의식을 적절하게 함양하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나서 성인이 되면 그때는 사회 전체가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이제는 어떻게 우리가 학교와 사회 전반적인 신뢰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다.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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