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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그리고 자이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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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작가 이민진은 통상 불러온 대로 하면 재미교포 1.5세이고, 정확히 말하면 미국 거주 한국계 미국인이다. 파친코는 1910년부터 1989년까지 조선과 일본을 배경으로 '자이니치'들의 신산스러운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여서 이주민이라는 소재가 강한 호소력을 갖는 북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이니치의 존재와 역사를 환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이니치(在日)는 흔히 재일동포 또는 재일교포라 불렀던 이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과 후손을 가리킨다. 재일동포나 교포라는 말은 같은 민족이라거나 외국에 살고 있다는 뜻이어서 당사자가 아닌 우리 시각이 배어 있다. 그래서 자이니치들은 자신을 자이니치라 칭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용어가 보편화해 가는 것 같다. 일본에서 자이니치의 역사는 한마디로 차별과 배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은 물론 사기업에도 취직할 수 없어 많은 이들이 폐품업, 야키니쿠(고기구이)업, 파친코업 등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조금씩은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한다). 대부분의 자이니치들이 학교에서 자이니치임을 숨겨야 했고 밝혀지면 조롱과 멸시, 따돌림을 피하기 어려웠다. 경향신문 사법전문기자였던 이범준 작가는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라는 책에서 주로 자이니치 변호사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러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법과 제도의 관점에서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이범준은 책 서문에서 "미우나 고우나 자이니치들을 도와온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일본인임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그만큼 우리는 자이니치에 대해 무관심했고 특히 한국 정부의 태도는 기민(棄民)정책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처음 일본 변호사가 된 자이니치였던 고 김경득 변호사도 그랬다. 그가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우리 사법연수원에 해당하는 일본 사법수습소 수습생 채용 신청을 하자, 사법수습소를 관장하는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는데, 이때 김경득을 도와 사태 흐름을 바꾼 이들은 일본인 변호사들과 당시 최고재판소 인사국 임용과장인 이즈미 도쿠지였다(이즈미는 후일 최고재판소 재판관이 되었다).
실상 자이니치란 말은 '일본에 있는'(在日)이란 뜻일 뿐 '누구'라는 점은 빠져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무시되고 배제돼 없는 사람처럼 취급된 현실을 잘 반영하는 말이 되었고, 한편으론 특정 국적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성과 개방성 또는 경계인 됨을 함의하게도 되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구체적 삶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인 되기와 한국 국적만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이니치를 차별하고 배제한 일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이고 이민진 같은 재미교포 2, 3세가 미국 국적을 갖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적일 수 있다.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상관없다는 말처럼 차별과 배제의 역사가 자신들을 저버렸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자이니치의 역사적 경험이 우리 민족 공동체의 자산이 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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