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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시엔, 한국의 고시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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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 이벤트 고시엔(甲子園ㆍ일본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결승전이 23일 끝났다. 내년이면 개장 100주년을 맞는 한신의 고시엔구장에서, 103년 만에 결승에 오른 게이오 고교가 10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더위에 선수들이 쓰러져 나가는 상황에도, 태풍으로 순연된 일정에도 4만7,000여 석의 입장권이 매진됐다니 그 유구한 역사를 가진 현장의 뜨거웠던 열기를 짐작하게 한다.
일본 열도가 들끓는 고시엔의 위상은 상상 이상이다. 올해로 105회째를 치른 이번 대회에는 전국의 3,486개 팀이 예선을 거쳤다. 한 번 지면 그대로 탈락하는 극강의 서바이벌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본선에만 진출해도 지역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리고 주민들은 버스를 전세 내 원정 응원을 떠난다. 일본 선수들은 ‘고시엔 출전자’라는 타이틀만 달아도 평생 칭송받는다. 구장의 검은 흙을 주머니에 담아 가는 ‘의식’을 치르는 이유다. 2년 연속 고시엔에 진출해 화제가 됐던 한국계 교토국제고를 올해 초 취재한 후배 기자에 따르면 교토 지역에서 택시를 타면 학교명은 몰라도 고시엔에 나간 팀이라고 말하면 안다고 한다.
미국에 ‘3월의 광란(대학농구)’이 있다면 일본의 자랑은 단연 ‘8월 고시엔’이다. 공영방송인 NHK가 본선 전 경기를 생중계하며, 시청률은 30%에 육박한다. 고시엔구장은 일본프로야구 최고 인기를 다투며 올 시즌 1위를 달리고 있는 한신 타이거즈의 홈구장이지만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인 이맘때 고시엔 대회를 위해 구장을 비워주고 오사카 시내의 교세라돔으로 잠시 옮긴다.
제51회 대회가 진행 중인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도 8월에 열리는 통합 토너먼트 대회로 고시엔에 비견되지만 일본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결승전이 아니면 학교 관계자들과 선수 가족들, 프로야구단 스카우터들만 듬성듬성 스탠드를 지키며, 중계는 16강 이후에나 특정 스포츠채널에서 볼 수 있다. 아마추어 야구의 메카로 불린 동대문구장을 철거(2008년)하는 해프닝 이후 변두리 사회인 구장을 전전하는 게 우리네 고교 선수들의 슬픈 현실이다.
우리도 일본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인 1970년대만 해도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날 암표는 기본이었고, 표를 구하기 위한 팬들의 발길이 서울운동장(1985년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에서 동대문시장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장사진을 이뤘다. 1971년 제1회 봉황대기 MVP인 남우식씨는 “예선을 안 거치고 모든 고교 팀이 출전하게 된 첫 대회였고, 동대문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당시 뜨거웠던 분위기를 회상했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그 시절 기댈 곳은 고향, 그리고 스포츠밖에 없었다. 그래서 출신 지역 팀이 출전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혼자 가기 섭섭하니 동문 선후배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야구장 동문회’를 만들었다. 이기면 이긴 대로, 지면 진 대로 시원한 생맥주 한잔하며 뒤풀이를 즐겼다.
오랜만에 찾은 목동구장은 역시나 썰렁했다. 풋풋하고 순수한 학생 야구의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과 달리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 밀린 뒤 인기 회복이 요원한 한국 고교야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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