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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헌신으로 성공한 호퍼… 그 예술 속에 가려진 폭력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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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조카 지민이에게
여름방학도 끝나가고 개강이 코앞이라 몸도 마음도 분주하겠구나. 엄마로부터 아르바이트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들었어. 너무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순하게 웃던 네 얼굴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한데 어느새 훌쩍 자라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지민이가 이모는 너무 자랑스럽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니 운동과 휴식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허락하기 바라.
이런 이야기라면 우리가 으레 하듯이 전화나 카페 나들이로 될 텐데 웬 편지인가 싶겠구나. 오늘은 이모가 지민이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공개편지를 쓰고 있단다. 지난 일요일, 이모는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전에 다녀왔어. 기억하지? 몇 달 전 이모가 여름방학 때 같이 가자고 했던 전시회 말이야. 그때 너는 에드워드 호퍼는 ‘가정폭력 가해자’라 전시회에 가는 게 내키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말했지. 그 말을 듣고 이모는 깜짝 놀랐어. 20여 년 전 처음 호퍼의 작품을 접한 이후 줄곧 그에 대한 팬심을 간직해 왔거든.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대도시에 대한 세련된 우울의 감성이 이모는 참 좋았어. 그런데 그가 ‘가정폭력 가해자’라니, 좀 더 알아봐야겠구나 싶으면서도 끊이지 않는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들로 이모도 지쳐있던 터라 그만 마음이 애매해져 버려서 더 이야기 안 했네.
지난 일요일이 전시회의 마지막 날인 건 그날 아침을 먹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어. 호퍼와 부인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그의 작품이 달리 보일지 여러 가지가 궁금해지면서 갑자기 혼자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을 나섰단다.
이모는 조세핀 호퍼가 에드워드 호퍼의 부인이자 엄청난 조력자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회는 그녀에게 한 섹션을 할애해서 제법 자세히 소개를 하고 있더구나. 전시회 카탈로그에 의하면 그녀는 “1905년 뉴욕 예술학교에 등록하여… 1914년에는… 미국 모더니스트들과 함께 그룹전을 가질 정도로 촉망받는 예술가였다. 수채화에 두각을 보이던 조세핀의 영향으로 호퍼는 1923년에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함께 야외 작업을 하며 수채화를 시도한다. 그해 가을 그녀의 소개로 브루클린 미술관에 출품된 호퍼의 수채화는 미술관 소장품으로 채택되며 미술계의 큰 호응을 얻는다.”(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중에서) 1924년에 둘은 결혼하는데 이 무렵 조세핀은 이미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신진 예술가였고(사실 조세핀은 피카소, 모딜리아니, 만 레이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에 참가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녀의 명성을 상당히 축소해서 서술한 듯해) 에드워드는 광고나 잡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며 자신이 ‘진짜 예술가’가 될 수 있을지 회의에 빠져있었던 무명의 지망생이었던 거지.
에드워드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며 내성적이었고 조세핀은 활달하고 밝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지 않았다고 해. 이런 성격은 둘의 결혼 이후 화가와 매니저라는 성별 분업으로 이어졌어. 그녀는 작품의 기획을 함께 했고, 모델로서 그림의 일부가 되었고(에드워드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은 조세핀을 모델로 해서 그려졌어), 전시회와 판매를 책임졌어. 이번 전시회에서는 조세핀이 남긴 꼼꼼하고도 방대한 노트들을 디지털화했던데 그녀의 일이 통상의 매니저 범위를 훌쩍 넘어서서 그림이 완성되고 팔리는 모든 과정에 개입한 것임을 잘 알 수 있었단다.
전시회는 조세핀을 에드워드의 조력자로만 소개했는데 사실 그녀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로서의 활로를 모색했다고 해. 그러나 쉽지는 않았지. 에드워드는 내성적인 성격을 핑계 삼아 작품이 완성되고 팔리는 전 과정에 조세핀이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구했고, 다른 수입원이 없었던 부부로서는 팔리기 시작한 에드워드의 작품에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었기에 조세핀 본인의 작업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어. 둘은 작품들을 자신들이 함께 낳은 ‘자식들’로 묘사하는데 조세핀은 이렇게 덧붙이지. 에드워드의 작품들은 새로 태어난 ‘후계자’로서 환영받았지만 자신의 작품들은 ‘사산(死産)된 불쌍한 아기들’이라고 말이야.
이모는 에드워드와 조세핀 사이에 있었던 잦은 다툼과 폭력은 둘의 이런 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엘리자베스 톰프슨 콜리어리(Elizabeth Thompson Colleary)는 묻혀 있던 조세핀의 작품들을 발굴해 그녀에 대한 전시회를 최초로 기획한 학자인데, 에드워드와 조세핀의 관계가 몹시 불안정한 것이었다고 썼더구나. 특히 1934년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에 스튜디오 겸 집을 마련한 이후 다툼은 더욱 심해졌다고 해. 이 집은 외따로 떨어져 있어 작업에 집중하기에는 좋았지만 다른 할 것은 없는 곳이었는데 에드워드는 조세핀이 운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그녀는 혼자서 집 밖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았거든. 더 황당한 것은 에드워드가 스튜디오 내에는 조세핀이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어놓고 자신은 작업에만 몰두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녀는 그가 뭔가를 필요로 할 때 그 요구에 바로 응할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작업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는 정도의 거리에 항상 대기 상태로 있기를 강요당한 거야.
에드워드의 전기를 쓴 미술사가 게일 레빈(Gail Levin)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들이 함께한 시간이 흘러갈수록 에드워드는 중요한 예술가로 대접받게 된 데 반해 조세핀은 변변한 전시회 한 번도 못 하는 흘러간 작가가 된 과정에 주목해. 결혼한 지 8년 만에 조세핀은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커리어가 망가졌음을 알았어. 12년이 지난 후에 쓴 일기에는 그녀의 작업에 대한 남편의 경멸, 에드워드 본인의 작업에 문제가 생기거나 우울증이 도질 때마다 퍼붓는 조롱과 모욕 그리고 신체적 폭력이 낱낱이 드러나 있지. “그가 심술궂게 구는 것과 때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이즈음 그녀가 쓴 일기의 한 문장이야. 20년이 지난 후 그녀는 그가 작품에서 그녀의 존재를 지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1940년대 후반부터 미국 예술계를 강타한 추상 표현주의의 흐름에서 자신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고 느낀 에드워드는 그에 대항하는 미국적 예술의 진정한 아버지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려고 한 거야. 남성의 (상징적) 아버지 됨과 여성의 존재 및 노동이 양립할 수 없는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역시 안 가길 잘했다 싶니? 이모는 가길 잘했다고, 지민이와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걸 싶었어. 에드워드의 작품에 조세핀의 헌신과 노동이 필수불가결했다는 걸 알고 나니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오더구나. 무엇보다 남편과 자신의 인생 그리고 그림에 최선을 다했던 조세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단다.
물론 여성에 대한 폭력의 끊임없는 행진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나날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폭력의 세부적인 모습들을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해. “문학의 힘은 악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째서 그것이 악으로 불리는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악으로 느끼게 하는지와 같은 세목들을 살피는 재현 속에서 연유하지 않을까? 적이 소멸한 곳에서 결투는 부재한다. 싸우기 위해서는 적의 얼굴을 알아야 한다.” 문학평론가 전승민이 '악인의 서사'에 쓴 이 문장에 이모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기서 문학은 예술로 바꿔도 무방하지.
에드워드 호퍼가 예외적으로 질 나쁜 악인이라는 의미는 아니야. 오히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남성 예술가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더 잘 살펴봐야 하는 거지. 평범한 남성성이 예술이라는 명분과 손잡으면 그토록 손쉽게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이모는 마침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 열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이 질문을 좀 더 생각해 보려고 해. 개막작 '쇼잉업'은 가족과 친구를 돌보며 전시회를 준비하는 여성 조각가의 이야기이고 '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위한 그림'은 최초의 추상화가로 알려진 칸딘스키 이전 이미 추상화를 그리고 전시한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를 조명한다고 하네. 이 영화들을 보고 미처 못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번에는 이모와 함께 갈 거지? 미래의 예술에 대해 지민이와 함께 이야기 나눌 며칠 후를 기약하며 이만 편지를 줄인다. 곧 반갑게 만나자.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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