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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 보고' 국립공원에서 석유 개발이라뇨? 국민투표 부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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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에콰도르 사람들이 국민투표를 했다. 결과는 가결. 90% 넘는 유권자가 표를 던졌고, 60% 가까이가 찬성했다. 반대는 40% 남짓. 현지 언론 에콰도르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20일(현지시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투표용지에 적힌 질문은 이랬다. "에콰도르 정부가 43광구로 알려진 지역의 ITT 원유를 땅속에 무기한 보관해 두는 것에 동의합니까?"
질문이 복잡하다. 쉽게 풀면 "개발하지 않고 원유를 그대로 땅속에 두기로 한 것에 찬성하느냐"가 되겠다. 국민들은 그러자고 했다. 에콰도르 사람들이라고 개발을 바라지 않을 리 없다. 문제는 '43광구'가 야수니 땅이라 불리는 토착민 지역, 자연보호구역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에콰도르 동부, 페루 접경지대에 있는 야수니는 면적이 1만㎢에 육박하는 열대우림 지역이다. 아마존 분지를 흐르는 쿠라라이강이 나포강과 만나는 곳에 거대한 습지가 형성돼 있어 온갖 생물이 서식한다. 탄닌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쿠라라이는 흔치 않은 '검은 강'이다. 강은 습지를 흐르다 나포강과 만나고, 다시 아마존과 합쳐진다. 적도, 안데스 산맥, 아마존 열대우림이라는 세 가지 독특한 지역이 만나는 지점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생물학적으로 다양한 곳'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실제로 2010년 발표된 다국적 연구에서는 이곳의 100㎢ 미만 지역에 서식하는 나무, 양서류, 박쥐의 종 숫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기록됐다.
에콰도르 정부는 이미 1979년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고, 유네스코는 10년 뒤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선정했다. 여러 아마존 토착부족이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고 있거나 지금도 거주하고 있다. 그중 타가에리 부족과 타로메나네 부족은 스스로 고립을 택해 여전히 외부와의 접촉 없이 살아가고 있다. 수도 키토에서 250㎞ 떨어진 이 숲과 습지에서 토착민들은 강을 타고 옮겨 다닌다.
토착민들과 환경단체들은 개발이라는 이름의 땅뺏기와 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싸움이었다. 한쪽에는 개발론자들이, 한쪽에는 보호론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역 부동산 개발 수준의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에콰도르의 정치 역학, 원주민들이 겪어내야 했던 수백 년 착취의 세월, 목소리를 잃고 숲으로 들어간 부족들을 이제라도 지켜주려는 사람들, 기후변화를 막자면서도 저개발 지역의 현실은 외면하는 국제정치 등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국가가 보호구역으로 삼은 지 40년이 넘었건만, 석유 매장지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끊임없이 시추와 개발 움직임이 일어났다. 야스니 국립공원 안에 에콰도르 원유 매장량의 40%에 달하는 17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국민투표 문안에 나온 ITT, 즉 '이슈핑고-티푸티니-탐보코차'가 그 유전의 이름이다. 개발 바람이 불자 유전영장류 학자 제인 구달, '통섭'으로 유명한 미국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을 비롯해 세계의 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이 이 땅을 그대로 두라고 촉구했다.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등도 거들었다. 과학자들은 아마존이 곧 '티핑 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석유 채굴과 삼림 벌채로 강우량이 줄고 있다는 증거가 있고, 이미 열대우림의 소멸을 가속화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칠레와 콜롬비아, 튀르키예, 호주, 벨기에 등은 야수니를 보호하기 위해 돈을 대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인 돈은 턱없이 적었다. 2007년부터 10년간 재임했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에코투어리즘과 환경정의에 무게를 뒀고 '야스니-ITT 이니셔티브'로 이름 붙여진 국제적 모금 계획을 주창했으나 결국 2013년 폐기했다. 36억 달러를 모으려 했는데 약속된 돈은 3억4,000만 달러뿐이었고, 실제로 들어온 것은 1,300만 달러 정도였다. 두 손 든 코레아는 시추 쪽으로 선회하면서 석유 수입이 빈민을 위한 정책에 쓰일 수 있도록 경제적, 법률적, 기술적 연구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2016년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에콰도르는 국립공원 내 43광구 시추를 시작했다. 지금은 에콰도르 산유량의 12%인 1일 5만5,000배럴 이상을 채굴하고 있다.
토착민과 환경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환경단체 '야수니도스'를 비롯해 공원을 지키려는 쪽에서는 10년 전부터 이 땅에서 석유를 캐낼지를 국민들에게 묻자며 국민투표 운동을 벌여 왔다. 처음엔 무시하던 정치권도 여론과 함께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야수니도스 등은 "다가올 대선 때 야수니 채굴 국민투표도 함께 실시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받아냈다. 이로써 지난 20일 대선, 총선과 함께 국민투표가 이뤄졌던 것이다. 토착민인 와오라니족 지도자 네몬테 넨키모는 투표가 결정되자 "이제 우리는 석유회사를 내보내고 땅과 물과 생명에 승리를 안겨줄 힘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각료와 정치인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빤한 소리로 맞섰다. 에너지 장관 페르난도 산토스는 헌재 결정 뒤 알자지라방송 인터뷰에서 "국가적 손실이 연간 12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뒤에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페트로에콰도르가 채굴을 중지할 계획을 세우는 데에만 석 달이 걸릴 것이라며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반면 야수니도스는 소셜미디어에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는 글을 올리고, 이번 투표가 "에콰도르와 지구를 위한 역사적인 승리"라며 박수를 보냈다. 야수니도스와 환경·사회단체들의 걱정거리는 따로 있다. 이들은 채굴이 중단된 이후 석유회사가 시설을 방치하고 오염을 가중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물론 경제 걱정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에콰도르의 1인당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만 달러 정도인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지면서 고유가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코로나19 전에도 성장이 정체돼 있었던 데다, 2020년에는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경제규모가 8%나 줄었다. 불평등이 심하고 빈곤 인구가 25%에 이른다. 하지만 석유 개발이 경제를 살릴 열쇠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세계은행도 이 나라가 기후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를 통해 성장의 경로를 다시 열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탈탄소 개혁으로 가는 길이 쉬울 리 없다. 개도국이 자원 채굴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온라인 '기후 정상회의'를 열고 미국이 기후 대응에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잇달아 회의를 소집했고, 유명무실했던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 경제국 포럼(MEF)'을 활성화하면서 한국을 포함해 기후 대응에 돈 댈 만한 나라들을 규합했다. 지난 4월 이 포럼 회의에서는 아마존을 살릴 5억 달러 기금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21년 11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에콰도르가 갈라파고스 자연공원을 넓히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그 대가로 '채무 스와프'를 요청했을 때, 채권국인 부자 나라들은 거부했다. 기예르모 라소 당시 에콰도르 대통령은 생물종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 채권국들은 부채를 없애 달라고 요구했다. 에콰도르의 대외 부채는 GDP의 45%인 460억 달러 정도인데 영국, 스페인, 미국 등 외국 정부에 진 빚은 그 가운데 20%가 못 된다. 채무 스와프 제안은 경제난을 타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에콰도르를 비롯해 중남미와 세계의 여러 개도국이 줄곧 요구해 온 '기후 정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개도국의 기후 대응과 에너지 전환에 부자 나라들이 돈을 내라는 것은 시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며, 지구를 망친 자들이 개도국들에 진 환경 빚을 갚으라는 정당한 요구라는 것이었다.
부국들이 책임을 미룰 때, 에콰도르인들은 석유 파내기 대신에 환경 보전을 택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야수니의 원유뿐 아니라 키토 외곽의 생물권 보호구역인 초코 안디노 데 피친차의 채굴도 투표에 부쳐졌다. 70%의 유권자는 이 지역에서 구리, 금, 은을 캐내는 걸 중단하는 쪽에 표를 던졌다. 토착민 지도자의 말처럼, '땅과 물과 생명에 승리를' 안겨주려 애쓰는 것은 개발과 성장을 주문처럼 외워온 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땅과 물과 생명과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지구상의 힘없는 사람들이다.
★’구정은의 세계, 이곳’은 이번 원고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아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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