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우린 죽어나는데, 정부 대책은 없어"… 오염수 방류에 어민·상인 절망감 토로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결국 올 것이 왔네요.”
“수산물 파는 상인 입장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소비자라도 생선 안 살 것 같은데···.”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8월 24일)를 목전에 둔 국내 어민들은 막막함을 넘어 절망감을 토로했다. 추석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오염수 방류로 ‘대목’을 날리게 된 상인들 표정에도 근심이 가득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과학적 검증 결과와 무관하게 수산물 기피 현상이 급속도로 퍼져 나갈 것이 뻔하다는 사실이다. 이미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수산물 소비가 40% 급감한 아픈 기억이 있다. 수산업계는 방류가 뻔히 예상됐는데도 별다른 대책 하나 없이 여전히 ‘네 탓’ 공방만 벌이는 정부와 정치권에 강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23일 낮, 동해안 최대 어시장인 경북 포항 죽도시장. 수산물 좌판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포항수협 위판장 1층 안 공기는 냉랭했다. 스티로폼 상자로 쌓은 매대 위 생선에 물을 뿌리던 한 상인은 “지금도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이제 누가 와서 사 먹겠냐”며 “우리만 죽으라는 거지”라며 가슴을 쳤다. 옆 상인도 “한 달 뒤면 추석인데 장사는 다 끝났다”며 “잠도 안 오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회 식당 수십여 곳이 몰려 있는 포항시 북구 두호동 설머리물회특구단지도 가게마다 테이블이 텅텅 비어 있었다. 한 횟집 주인은 “과학자들은 조류 흐름상 당장 국내 바다에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일본 바로 옆인데 그 말을 누가 믿겠느냐”며 “코로나 끝나고 장사가 좀 되려나 했는데 망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부산 자갈치시장 역시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건어물 가게 한 상인은 “멸치, 김, 다시마는 명절 선물세트로 팔리는데 추석 앞에 날벼락을 맞았다”며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어민들의 분노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했다. 수산물 가공업체인 동우물산의 황보관현 대표는 “정치인들이 해결책은커녕 지금도 공방만 벌이고 있다”며 “대책 없이 서로 비난만 할 거면 언급 자체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년 넘게 양식장을 운영한 수산업체 대표는 “고수온으로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고 있는데 오염수 방류까지 겹쳐 죽은 생선 치울 힘도 나질 않는다”며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 정부가 대책을 세워놓은 게 있긴 한 건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원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빗발쳤다. 박상우 서해근해안강망연합회장은 “국회를 몇 번이나 갔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면서 “일본은 막대한 정부 예산으로 어민을 지원한다는데 우리 정부는 지원은커녕 어민 목소리를 들을 자세도 안 돼 있다”고 날을 세웠다. 김성호 한국수산업경영인연합회장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로 수산업계가 오랜 기간 침체됐던 일을 거론하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위를 즉각 설치하고 피해 어업인에 대한 다각적 지원방안, 소비 촉진과 비축, 방사능 검사 강화 등이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도 등 바다와 인접한 지자체들도 수산물 검사 횟수와 분석 빈도를 크게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경북도는 현재 도 어업기술원과 포항시가 총 4대 보유한 감마핵종분석기를 연말까지 경주시ㆍ영덕군ㆍ울진군에 1대씩 추가하고, 어업기술원에 베타핵종분석기 1대를 더 도입하기로 했다. 전남도는 기존 62개 품종에 800건 정도 해 오던 수산물 안전성 조사를 전 품종 1,200건 이상으로 확대한다. 강원도 역시 도내 주요 위판장 21개소를 대상으로 수산물 시료를 구입, 매일 방사능 검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서울시도 서울 수산물 유통량의 21.7%를 차지하는 가락시장, 노량진시장, 수협강서공판장 등 3대 도매시장에서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방사능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성준 경북도 해양수산과장은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안전 모니터링단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자체들은 특별법 제정과 특별재난구역 지정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 낼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