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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은 바야흐로 인사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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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이 조용했던 적이 있던가? 조용하면 오히려 기삿거리 아니야?”
세 번째 법조 출입 기자로 등록을 마치고 전입 인사를 하면서 “요즘 서초동은 조용하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듣고 보니 우문현답이다. 돌아보면 서초동 출입을 할 때 단 한 번 조용했던 때가 없었고, 오히려 누가 봐도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넘쳐났다.
서초동에 첫발을 디딘 2016년의 가장 큰 사건은 단연 ‘국정농단’이었다. “죽을죄를 지었다”던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어느 날 당시 특별검사팀 조사에 앞서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쨍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특검 사무실을 청소하시던 분이 최씨 항변에 세 번이나 맞장구치듯 “염병하네”라고 말한 건 덤이다.
이듬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수감되면서 대선 일정이 변경돼 달력의 빨간 날이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이명박 전 대통령도 10년 전 제기된 의혹으로 영어의 몸이 됐고, 2018년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검찰에 떠넘기면서 법원의 수많은 판사들이 수사선상에 올라 검찰청사를 드나들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잠시 서초동을 떠났다가 돌아온 2020년 7월에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교과서에서나 보던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검찰총장을 징계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야당과 검찰이 내통했다는 ‘고발사주 의혹’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가 하면, 대선을 약 6개월 앞두고 ‘대장동 특혜 의혹’이 불거져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아무리 우리 사회의 종말처리장이 서초동이라지만 민생과는 무관한 정치적 이슈만 욱시글득시글하다.
돌고 돌아 다시 서초동으로 복귀한 2023년 8월, 서초동은 바야흐로 인사의 계절이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명됐고 검사장을 비롯한 검찰 인사가 예고된 상태다. 11월 헌법재판소장도 임기가 끝난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명된 22일 대통령실 설명을 듣고 보니 기시감이 든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후보자로 지명된 2017년 8월 당시 청와대 측은 “법관 독립에 대한 소신을 갖고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실행했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해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는 “재판 경험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서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대법원장으로 적임자라고 판단한다”며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이유를 강조했다. 어느 진영으로 분류되는지를 덜어내고 보면 대법원장 적임자라는 평가는 다르지 않다.
헌재 소장으로 이종석 헌법재판관 유력설이 거론되고, 조만간 단행될 검찰 인사도 비슷한 흐름일 것 같다고 한다. 서초동에 드나들 때 정권이 두 번 바뀌었지만 인사를 보면 방향성만 다를 뿐 차이를 모르겠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잡아 국정 운영을 하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감흥이나 기대감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정치권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인권보호가 목적인 검찰과 법치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사법부마저 정치지형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치는 건 그만 봤으면 좋겠다. ‘인사는 만사’고 ‘인사는 메시지’라고 했다. 이번 인사에 기대를 갖는 건 순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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