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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에 한지 공방 내준 전주 한옥마을, 2층 한옥·케이블카 추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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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은행로 초입. 일방통행로 양쪽으로 풍선 사격, 인형 뽑기 가게들이 빽빽했다. 한복대여점 직원들은 "사진까지 1만 원”이라며 호객 행위에 열을 올렸다. 300m 남짓 거리에 한복대여점과 점집, 사진관이 즐비했다. 최대 상권인 태조로는 야시장을 방불케 했다. 닭강정, 슬러시, 닭꼬치 등 길거리 음식 천지였다. 닭날개볶음밥(대만) 탕후루(중국) 등 국적도 다양했다.
한옥마을을 십(十)자로 가르는 은행로ㆍ태조로 대로변 상가 164곳 중 이 같은 ‘관광지형’ 가게만 90곳(54.9%). 대학생 김모(22)씨는 “한복 입고, 사진 찍고, 먹을 것도 많아 좋다”고 말한 반면, 직장인 장모(37)씨는 “흔한 먹자골목에 기와지붕만 씌워놓았다. ‘한옥 상점’ 아니냐”고 혹평했다.
전주 한옥마을은 20년 전만 해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ㆍ풍남동 일대 700여 채 한옥이 군락을 이룬 조용한 주거지였다. 변화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시작됐다. 전주시는 슬럼화하던 이곳의 한옥을 매입해 문화관ㆍ박물관을 짓고 도로를 닦았다. 2008년 정자와 물레방아가 있고 실개천이 흐르는 은행로가 준공됐다. 2002년 31만 명이던 관광객은 2010년 328만 명까지 급증했다. 다만 이때도 주거지 성격이 강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 전주는 후자를 택했다. 양적으로만 보면 결과는 성공적이다. 2030을 겨냥한 한복 대여와 길거리 음식 등이 인기를 끌며 2016년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림자도 짙었다. 마을 인구는 10년 새 절반으로 줄었고, 지나친 상업화로 한옥마을 특색을 잃고 어디서나 볼 법한 관광지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주시가 최근 개발 규제를 완화하면서 마지막 남은 전통 주거지마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전주 한옥마을은 주거지 기능을 많이 상실했다. 한국일보가 건축물대장과 인허가 자료, 현장취재 등을 토대로 ‘전주 전통문화구역 지구단위계획’ 내 건물 651채를 분석한 결과, 432채(66.4%)가 상업용이었다. 주거용은 181채(27.8%)였고, 나머지는 문화재ㆍ공공시설(38채ㆍ5.8%)이었다. 2009년 남해경 전북대 교수 조사에 따르면, 건축물 708채 중 주거용은 534채(75.4%)였고 주상복합ㆍ업무용은 174채(24.6%)였다. 10여 년 사이 주거와 상업 비율이 역전된 셈이다.
상업화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 ①은행로ㆍ향교길 등 마을 주요 가로(街路)에 접한 주택이 용도변경을 거쳐 카페와 잡화점 등 근린생활시설로 바뀌었다. 2010년 이후 건축물대장에 용도변경 이력이 기재된 건물 48건 중 44건(91.7%)이 이런 경우다. ②용도변경이 어려운 골목 안쪽 한옥은 숙박시설로 바뀌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한옥체험업 또는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게스트하우스) 허가를 받아 영업 중인 주택은 각각 175곳과 32곳에 달했다.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원주민은 마을을 떠났다. 치솟는 임대료에 내몰린 세입자도 있지만, 관광객 증가→상업수요 확대→지가 상승 흐름 속에 한옥을 팔고 제 발로 떠난 원주민도 적지 않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주말엔 차량 진입이 통제되고, 편의시설도 없고, 집값도 비싼 이곳에 누가 살겠느냐”며 “한옥을 활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만 들어온다”고 잘라 말했다. 2010년 2,083명이던 마을 인구는 지난해 908명으로 반토막 났다. 주거지이자 관광지라는 마을 핵심 가치 중 한 축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상업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1,000만 명이 찾는 관광지에 쇼핑과 숙박시설은 필요하다. 상업 콘텐츠가 관광객 유치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2013년 이곳에서 처음 시작된 한복 대여를 계기로 2030 사이에선 한복을 입고 한옥을 거닐며 ‘셀카’를 찍는 게 유행했다. 하지만 진명숙 전북대 교수는 “초기엔 한지와 도자기 등 공예 활동을 하며 ‘전주다움’을 추구하는 문화예술인과 주민이 공존했다”며 개발 속도와 방향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전주시는 관광객이 증가하자 한옥마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는 최근 지구단위계획을 변경, ①은행로 등 큰길에 한해 ‘지상 2층’ 한옥을 허용하고 ②상업 허가 요건도 ‘폭 8m 이상 도로에 접하는 대지’에서 ‘폭 6m 이상’으로 완화했다. 2011년 프랜차이즈 금지→2013년 층수제한(1층)→2019년 한복대여점 출점 제한 등을 통해 상업화 ‘붐’을 제어했지만 12년 만에 방향을 전환했다. 시는 케이블카 사업도 추진 중이다.
전주시 계획을 두고는 경관 훼손 우려가 만만치 않다. 키가 비슷한 수백 채 한옥의 처마와 처마가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은 마을의 최대 자산이다. 하지만 규제 완화로 최대 11m 높이(아파트 4층)의 2층 한옥이 생기면 경관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상업시설의 무분별한 주거지 침투를 금지해온 ‘8m 룰’마저 풀리면서, 그나마 주거지 명맥을 유지하는 향교 부근 등도 상업화 바람을 탈 수 있다. 장우연 전 전주시 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전통한옥지구와 향교 부근은 전통 한옥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곳인데, 이곳에도 상가가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민들도 마을의 변화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마을 토박이 이모씨는 “상업 지역은 인사동처럼 변했지만, 골목 구석구석에는 여전히 한옥이 자아내는 고즈넉함이 있다”며 "좁은 골목길에도 상가가 들어선다면 마을 정체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광의 역습 - 참을 수 없는 고통, 소음> 인터랙티브 콘텐츠 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2517140000790
<글 싣는 순서>
①마을형 관광지의 흥망사
②비극은 캐리어 소리부터
③저가 관광과 손잡은 시장님
④다가오는 관광의 종말
⑤숫자보다 중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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