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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이 된 어촌, 쓰레기장이 된 마을…관광객이 몰고 온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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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여름내 이래요. 정말 말도 못 해. 심할 때는 새벽 3~4시까지 저러니…살아 봐야 얼마나 더 살까 싶어 그냥 참는 거지.”
폭염 특보가 내려졌던 7월의 금요일 초저녁, 마을 토박이 A 할머니는 집 마당 피크닉 테이블에 앉았다. 쿵, 쿵, 쿵. 저음의 클럽풍 음악이 할머니의 귀를 때린다. 울타리 너머 옆집을 건너본다. 술과 아드레날린에 취한 듯한 젊은 남녀 30여 명이 테이블을 빼곡히 채웠다. 금·토요일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풍경. 옆집은 디스크자키(DJ)가 있는 야외 주점이다. 대형 스피커와 할머니 집 창문까지의 거리는 불과 4m. 창 아래서 소음 측정을 해봤다. 65~74데시벨(㏈) 사이를 오르내린다. 사무실 전화가 시끄럽게 울릴 때와 비슷한 수치로 생활소음 기준(60㏈)을 훌쩍 넘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 할머니는 밤이 깊을수록 소음이 더 커진다고 했다.
해 뜨는 모습이 아름다워 이름 붙여진 강원도 양양(襄陽). 하지만 7~8년 전부터 이곳은 낮보다 밤이 더 밝고 시끄럽다. 할머니는 이 지역에서도 최고의 ‘핫플’(뜨는 지역)인 현남면 ‘양리단길’에 산다.
할머니의 고충은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이 빚어낸 그림자다. 어쩌다 유명 관광지가 된 동네 주민들은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겪는다. 인파가 몰리는 휴가철은 최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관광객이 다시 밀려들자 삶의 질은 뚝 떨어졌다. 한국일보는 7~8월 국내 대표적 마을형 관광지인 △부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강원 양양군 현남면 인구1리 등 3곳에 각각 3~4일씩 머물며 주민들의 일상을 관찰했다. “마을을 폭파하고 싶을 지경”이라는 주민들의 고통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소음은 가장 흔한 피해 유형이다. 양양 인구해변 앞 양리단길 주변은 금·토요일마다 ‘소음 지옥’이 된다. 술집 등에서 나오는 앰프 소리의 영향이 크다. 몇 해 전부터 포장마차형 주점과 클럽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경쟁이 과열되자 업장들은 볼륨을 키우며 호객했다. 여기에 좁은 해안도로를 달리는 튜닝 차량의 배기음, 백사장에서 불법적으로 터뜨리는 폭죽 소리까지 뒤섞인다. 피서객들이 직접 들고 오는 대형 스피커도 골칫거리다. 이승범 인구해변 운영팀장은 “백사장에서 마을 쪽을 향해 스피커를 틀면 제재하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주택가에 전달되는 소음은 어느 정도일까. 토요일인 7월 29일 오후 11시쯤 양리단길 끝자락 준주거지역 내 2층 주택 앞에서 전문가용 소음계(클래스1)로 측정해봤다. 84㏈에이(A)까지 치솟았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내부 수준이다. 데시벨A는 사람에게 소음이 실제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고려해 보정한 수치다. 기온으로 치면 체감 온도와 비슷한 개념이다.
특히, 술집의 우퍼 스피커가 심야에 뿜어대는 소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저주파·저음역대에 특화됐기 때문이다. 한국일보가 류훈재 서울시립대 도시빅데이터융합학과 연구교수의 도움으로 양리단길 소음을 주파대역별로 분석해보니, 저주파대(63㎐) 소음이 최대 104㏈(A)을 기록했다. 류 교수는 “전자댄스음악(EDM) 등 저주파음은 회절(꺾임)해 담벼락 등 방해물도 잘 피해 간다"며 "시각이 제한되는 밤에는 청각이 더 민감해져 같은 소리라도 낮보다 더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은 단속에 소극적이다. 강원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모두 605건의 소음신고가 현남면에 접수됐지만, 범칙금은 딱 4건(0.66%) 부과했다. 건당 3만 원씩 총 12만 원이다. 솜방망이 벌금 탓에 술집 업주들은 볼륨을 낮추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쟁업체가 신고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장에 출동해 적절히 계도한다"고 말했다.
서울 북촌한옥마을도 소음 탓에 몸살을 앓는다. 밤과 낮,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북촌 주민인 김은미씨는 "고요한 아침 시간대 캐리어(여행용 가방)를 끌고 오는 외국인들이 있는데, 돌바닥 긁는 소리가 집 안까지 들린다"고 했다. 실제 김씨 집에서 창문을 열고 캐리어 소음을 측정했더니, 최대 81㏈이 나왔다.
국내 관광객이 ‘인증샷’을 찍으며 내는 소음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5~6명이 한꺼번에 뛰어올랐다가 떨어질 때 ‘쿵’ 하고 나는 진동과 소음은 주변 주택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북촌 중심 골목인 북촌로 11길에서 만난 50대 집주인은 "주말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웅성거리는 소리가 종일 귀에 꽂히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쓰레기와 화장실 문제도 심각하다. 마을형 관광지에선 쓰레기통이나 공공 화장실을 찾아보기 어렵다. 김수정 종로구 관광정책팀장은 "그런 시설을 설치하는 순간 마을이 정말 관광지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해도 관광객은 온다. 북촌은 한국 방문 외국인의 20%(276만 명·2019년 기준)가 찾는 곳이라, 주민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을 한다. 종로구의 한 직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북촌의 한 빌라 안뜰에 중국 관광객이 대변을 보고 갔대요. 급한데 화장실은 안 보이고 말이 안 통하니…"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어주면 집 안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외국인도 있다.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홍보하는 부산 흰여울문화마을도 위생 문제 탓에 골머리를 썩인다. 통장인 진순여(69)씨는 “주민센터에서 ‘아침에 온 외국인 관광객이 노상방뇨를 한다고 하니 화장실이 있는 마을 안내 사무소를 오전 10시 이전에 열어달라’고 요청하더라”고 전했다. 주민 편의는 고려하지 않은 조치였다. 진씨는 “사람 사는 동네이니 10시 이후에 방문해달라고 관광객에게 안내하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광객이 아무 곳에나 버리는 쓰레기도 주민들을 지치게 한다. 흰여울마을 주민 김갑순(62)씨는 집 앞 평상을 가리키며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저 위에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요. 관광객들이 많이 사먹거든요? 남으면 이 평상과 화단에 던지고 가요. 찐득찐득해서 불쾌하고 뒤처리가 말도 못 해요.”
일회용 커피컵도 심각한 문제다. 흰여울길에만 모두 37개의 카페가 있다. 일부 관광객은 커피를 사들고 영도 앞바다를 구경하다 슬쩍 컵을 버린다. 특히, 인파가 몰리는 주말에는 환경미화 인력도 나오지 않는다. 마을은 ‘쓰레기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지저분해진다.
불법 주차 문제는 마을의 안전마저 위태롭게 한다. 7월 27일 오전 찾은 북촌로 11길에는 ‘계고장’(경고장)이 붙은 승용차 3대가 서 있었다. 소방차 통행로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소방기본법 위반으로 화재 진압 때 치명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주민 이종선(76)씨는 “내국인 관광객 중 차를 타고 북촌에 와서 남의 집 앞에 대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빼 달라’고 전화하면 ‘주인이 따로 없는 길에 세웠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따지는 이도 있다고 한다.
양양도 주말마다 주차 전쟁이다. 7월 29일 인구해변 뒤편 주택가의 인구중앙길에는 2차선 너비의 80m 길에 차량 32대가 불법주차돼 있었다. 순찰 도는 경찰차가 곡예운전하듯 사이를 빠져나갔지만 단속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과태료 딱지라도 붙였다가는 ‘한철 장사’해야 하는 상인들의 민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5년여간 현남면에서 주차위반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12건에 불과했다.
사생활 침해도 일상화됐다. 흰여울마을 주민 진씨는 “카페들이 단층 건물을 2, 3층으로 불법 증축해 루프톱(옥상에서 영업하는 방식)을 만들어놨다”면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여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집 안까지 다 보인다”고 말했다. 북촌 역시 집 안을 몰래 찍는 일부 관광객 탓에 주민 불편이 크다.
불편함이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평생을 한 마을에서 살았던 고령 주민들이 거주지를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일보가 만난 주민 중 누구도 ‘관광객을 받지 말자’는 극단적 주장은 하지 않았다. 다만 지방자치단체가 관광객과 주민 모두 지치지 않도록 적절한 개입을 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김갑순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디 이사 갈 생각은 전혀 없어요. 돌아가신 엄마가 제사 지낼 때 못 찾아올까 봐… 관광객 오는 건 좋은데 나라가 어느 정도 관리는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게 무리한 요구입니까?"
<관광의 역습 - 참을 수 없는 고통, 소음> 인터랙티브 콘텐츠 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2517140000790
<글 싣는 순서>
①마을형 관광지의 흥망사
②비극은 캐리어 소리부터
③저가 관광과 손잡은 시장님
④다가오는 관광의 종말
⑤숫자보다 중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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