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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안 돼” “이참에 돈이라도” 두 쪽으로 갈린 ‘핫플’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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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1. 한옥 생활을 동경해온 김은미(58)씨는 지난해 초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자 북촌 한옥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엔 마을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평온한 일상은 깨졌다. 관광객이 불쑥 집으로 들어왔고, 캐리어 바퀴 구르는 소리는 새벽잠을 깨웠다. 김씨는 서울시 등을 상대로 “주거지와 관광지를 별도 공간으로 분리해달라”는 민원을 수차례 제기했다. 그는 “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서울에 남은 마지막 한옥 정주지(定住地)인 북촌을 보존하는 것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 북촌 한옥마을에 60년 이상 거주한 ‘토박이’ 이종선(76)씨 생각은 다소 달랐다. 그는 “관광객이 오면 시끄러운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 뒤 “전주 한옥마을처럼 상업 활동을 허용하는 게 북촌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현재 서울시는 북촌 지구단위계획을 토대로 주거 밀집지역 내 음식점ㆍ카페 등 상가 입점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보존 규제로 집주인들이 한옥을 빈집과 별장으로 놀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역설적으로 한옥이 훼손되고 있다는 게 이씨 주장이다. 차라리 전주처럼 관광지로 개발해 주민은 돈을 벌고, 관광객에게는 즐길 거리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문제가 난제인 이유는 주민들 생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에 따르면, 마을이 관광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①원주민 ②마을 정취에 끌려 이주한 문화 집단 ③상인 등 3개 그룹으로 분화한다. 마을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이주민들은 대개 주거지의 관광지화(化)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상인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속담처럼 개발 확대를 부르짖는다. 주민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해법이 극명하게 갈려 중지를 모으기 쉽지 않다. 북촌에서 관광객을 통제하는 ‘북촌 지킴이’ A씨는 “상점 앞에서 관광객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손짓하면 주인이 ‘왜 영업을 방해하냐’고 따진 적도 있다”고 전했다.
부산 영도의 대표적 관광지인 흰여울문화마을에서도 주민 내부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곳은 가파른 경사 위에 하얀색 집들이 붙어 있어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린다. 2013년 영화 ‘변호인’에 소개된 뒤 핫플레이스로 떠오르자 자본이 몰려들었다. 처음엔 주택을 소형 카페로 바꾸는 정도였지만, 관광객이 늘어나자 대형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현재 영업 중인 카페만 37곳. 2층과 3층에 설치된 루프톱 카페들은 골목 안쪽까지 파고들었고, 주민들은 관광객 소음과 사생활 침해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주민들이 지자체에 “관광객을 통제하고 카페 난립을 해결해달라”고 요구하자, 상인들은 이에 반발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종석 흰여울마을공동체 부대표는 “주민과 상인이 대립하는 적대적 구도가 형성돼 마을이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지자체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종 전 서울 종로구청장은 “지자체가 책임감을 갖고 주민과 전문가를 계속 만나야 한다. 얘기를 듣다 보면 내부 갈등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종로구가 정독도서관 일부 부지에 대형 화장실을 포함한 ‘북촌마을안내소’를 건립하려고 하자, 주민들 사이에선 “북촌 고유 모습을 훼손한다”는 반대 의견과 “관광객 편의를 위해 필요하다”는 찬성 의견이 충돌했다. 종로구는 이에 간담회 등을 수십 차례 개최한 끝에 화장실 규모를 축소하고, 서가·쉼터 등 주민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절충안을 도출해 2016년 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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