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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경계에서 한계 넓혀 온 개척자… 여름 음악축제 감독들의 '원픽' 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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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올해 8월은 해외 주요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인 ‘고잉홈 프로젝트’(대표 아티스트 손열음)와 한 작곡가를 선정해 2주간 음악축제를 여는 ‘클래식 레볼루션’(예술감독 안드레아스 오텐자머) 무대로 기억될 듯하다. 기획력과 실력이 돋보이는 두 음악축제는 공교롭게도 ‘레너드 번스타인’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무대를 열었다. 특히 ‘클래식 레볼루션’의 올해 주제는 번스타인이었기에,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우크라이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번스타인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지휘자, 강연자, 작가, 교육자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늘 함께 거론됐던 카라얀이 권위와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수직적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었다면 번스타인은 수평적 관계에서 넓고 다양하게 소통하고 금기시된 영역을 포함해 수많은 경계의 끝에서 한계를 넓혀 온 개척자였다.
번스타인 이전까지 뉴욕필은 존 바비롤리나 브루노 발터,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등 전임 지휘자들이 "이곳에서 수명이 단축됐다"고 할 만큼 비효율적 운영 방식 때문에 연주자들도 지치고 청중도 잃어 가고 있었다. 뉴욕필은 ‘개혁’을 위해 번스타인에게 지휘자 자리를 맡겼고 번스타인은 그 역할에 충실했다. 1958년부터 1972년까지 CBS TV에서 방영된 ‘청소년 음악회’(Young People’s Concerts)는 번스타인이 직접 대본을 쓰고 출연한 프로그램이다. 에미상을 세 차례 수상했는데 음악과 철학, 사회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머를 갖춘 이 매력적인 진행자는 어린아이를 비롯해 대중을 사로잡으며 매주 수만 명을 TV 앞에 끌어들였다. 요즘은 공연 전 해설을 곁들이는 무대도 많고 음악가와의 토크쇼, 음악 강의도 많은데 이것은 번스타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번스타인을 쇼맨십을 가진 '해맑은 지휘자'로 인식하는 대중도 많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서 만들었던 복잡다단한 경계인이었다.
번스타인은 다양한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던 시대를 살던 유대인이자 코즈모폴리턴 뉴요커였다. 부인과 자녀가 있지만 양성애자였고 매카시즘이 활개 치던 때에 좌파 성향의 음악가였다. 동시에 소련 공산 체제가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억압한 일에 크게 분노했던, 양극단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그의 교향곡과 관현악곡, 합창곡에는 유대 종교음악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고 협주곡, 오페레타, 관현악곡 등에는 20세기 뉴욕을 지배하고 있던 재즈와 라틴 리듬의 특징이 크게 나타난다. 손열음이 ‘음악적 멜팅팟’이라 표현한 번스타인의 작품 세계는 그를 키워 온 환경 그 자체였던 것이다. 구약성서에 기초한 종교음악의 형식과 20세기 미국의 재즈와 라틴 음악의 색채가 한 작곡가에게서 나왔다니 그가 종횡으로 얼마나 분주한 세계를 살았는가 싶다.
비록 격식을 차리지 않는 번스타인의 행보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큰 성공은 작곡가와 지휘자에게 진지함과 신비감을 기대하는 청중과 평론가들의 비난거리였지만, 그가 뉴욕필을 그만둘 때까지 번스타인을 깎아내렸던 평론가 헤롤드 숀버그도 말년에는 그의 음악적 완성도에 결국 박수를 보내게 된다. 무엇보다 뉴욕필의 완고한 단원들이 "번스타인으로 인해 음악을 다시 사랑하게 됐다"는 고백과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함께 키웠다고 생각하는 자부심은 번스타인이 만들어 낸 특별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번스타인이 뉴욕필하모닉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건너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했을 때 단원들을 다독이면서 말러 작품의 가치를 함께 깨닫게 만들어 간 일화로 이어질 수 있겠다. 번스타인은 최초로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지휘자다. 그는 말러의 부인 알마와 친구가 되어 말러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고 알려지도록 애썼다. 60여 년 전 빈필 단원들은 자신들의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말러를 귀한 작품으로 알아보고 사랑하진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당시 빈필 단원들의 푸념 섞인 표정과 인터뷰가 재밌는데 오늘날 번스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이와 비슷할까.
오텐자머는 "번스타인은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준 중요한 인물"이라고 했다. 번스타인은 전 생애에 걸쳐 '전통'과 '혁신'이라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두 단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았다. 완벽한 인간이 될 순 없었겠지만 음악 안에서 다듬어진 그의 결과물은 대단히 조화롭고, 유쾌했으며, 놀랍고, 자유로웠다. 번스타인은 음악을 통해 그가 경험한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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