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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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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듯 한다'는 말이 있다. '밤새우기를 밥 먹듯 하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다'처럼 예사로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밥은 끼니로 먹는 음식 그 이상이다. 먹고살기 위한 일거리란 '밥거리', 끼니때 곧 '밥때'는 일상의 반복을 전제한다. '밥때가 되다, 밥때가 지나다, 밥때를 놓치다, 밥때를 챙기다' 등이 그러하다. 갓 지어 따뜻한, 밥때에만 만날 수 있는 '더운밥', 시간이 경과된 '식은밥', 끼니때가 지난 뒤에 차리는 '한밥'도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이해된다.
'이밥에 고깃국'이 꿈이던 시절에는 '꽁보리밥, 조밥, 싸라기밥' 등 잡곡밥이 많았다. 나물을 쌀에 섞어 지은 '비지밥, 기장밥, 채소밥'이 예사일 때, 새하얀 쌀밥은 '옥(玉)밥'으로 불렸다. 고들고들한 '고두밥', 솥 바닥에 눌어붙은 '눌은밥'처럼, 매일 하는 밥인데 신기하게도 다르다. 모내기를 하다가 들이나 논둑에서 먹는 '못밥, 기승밥'은 그릇 위까지 수북하게 담은 '감투밥, 고봉밥, 높은밥'이었다. 품삯을 받는 일꾼들이 먹는 밥이라고 '머슴밥'이라 한다. 여럿이 먹도록 함께 담은 것은 '모둠밥', 먹을 만큼 먹은 뒤에 더 먹는 것은 '가첨밥, 덧밥'이다. 갑자기 많이 먹는 '소나기밥', 죄수에게 벽 구멍으로 몰래 들여보내던 '구메밥' 등도 재미있다.
일자리를 얻는 일을 '밥을 벌다'라 한다. 나라와 관련된 일을 하면 '나랏밥을 먹는다'고 하고, 기계를 만들고 고치는 일은 '기름밥을 먹는다'고 한다. 객지살이를 하면서 먹는 '객짓밥', 남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얻어먹는 '드난밥'도 있다. 밥은 사람의 먹거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개구리밥, 고사리밥, 꿩의밥, 토끼밥' 등 유사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식물 이름에도 밥이 붙는다. 늦가을 날짐승에게 남겨 둔 빨간 감도 '까치밥'이고, 시계가 돌아가도록 태엽을 감거나 건전지를 넣어 주는 일도 '밥을 주다'이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고기를 양껏 먹고도 밥 한술은 떠야 식사가 마무리된다. 밥을 잘 먹도록 입맛을 돋우는 맛깔스러운 반찬들을 '밥도둑'이라 한다. 영어로는 '너무 맛있어서 밥이 빠르게 사라지게 하여 붙는 이름'이라고 길게 서술된다. 밥을 먹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오히려 밥도둑이라 칭하니, 반찬으로서는 억울할 일이다. '밥 친구'를 마다할 한국인은 드물다. 반가운 사람 앞에서 나도 모르게 '우리 밥 한 끼 같이 해요'라고 인사하는 한국인, 밥에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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