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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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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4년 전 기사의 조회수가 갑자기 올랐다. 전북 전주 한 중학교의 젊은 영양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딸의 죽음이 억울해 기자에게 제보했다. 맵고 짜고 단것을 선호하는 학생들에게, ‘건강급식’을 앞세웠다가 “맛없다”는 민원 폭탄을 맞고 괴로워하던 2년 차 영양교사 박세진(가명)씨. 서이초 사건으로 분노한 교사들이 세진씨 기사를 찾아내 슬퍼했던 것 같다.
□ 당시 해당 학교 교감의 자세는 참담한, 그리고 익숙한 ‘책임회피 관리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영양교사의 사망 원인은 결혼 반대로 알고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세진씨의 동료·지인, 그리고 남자친구가 모두 부당한 민원 때문임을 증언하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경찰 또한 타살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원인을 파고들지 않았다.
□ 학부모들은 급식 맛을 항의하러 애초 교장과 교감을 찾았다. 그런데 “(영양교사에게) 직접 이야기하시라”고 떠넘겼다. 학부모들이 세진씨를 찾아가 “맛이 없다”고 하자, 세진씨는 “건강을 우선 생각했다”고 소신을 말했다. ‘영양교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급식도 교육이다. 학부모들은 돌아가면서 “신출내기가 까불고 말대꾸한다, 아침저녁으로 (전화로) 돌아가면서 항의하자”는 말을 했다.
□ 인근 학교 영양교사 이모씨는 세진씨와 친분이 있었다. 그도 학기 초 세진씨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세진씨와 달리 잘 적응했다. 이유를 꼽자면 관리자가 달랐다. 교감이 어느 날 이씨에게 전화했다. “학생들이 밥이 맛없어졌다고 학부모님들에게 말을 하나 보다. 나는 맛있는데. 선생님이 바뀌어서 애들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이런 민원 사항이 들어왔으니까 조금만 더 신경 써주라.” 이씨가 직접 민원에 노출되지 않게 하고, 기분 상하지 않게 전달했다. “나는 맛있는데~” 하는 교감선생님의 말투를 흉내 내며, 기자에게 전하던 이씨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책임을 다하는 관리자는 교사의 목숨을 구한다.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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