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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입력
2023.08.20 22:00
27면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꽤 오래전에 아내와 일본의 한적한 섬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는 우리 부부를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허름한 초밥집으로 안내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외관은 이래 보여도 대단히 유명한 장인이 하는 곳이라서 하루에 딱 한 팀만 받는데 자신도 예약에 처음 성공해 보는 거라서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맛있게 식사를 마친 다음이었다. 유명한 곳인 만큼 가격도 상당히 비쌌는데, 갑자기 주인이 손사래를 치면서 당신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을 테니 그냥 가라고 한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과거에 자신이 한국 사람에게 큰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이 갚을 기회라고 생각해서라며 더 이상의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고 고집스레 팔짱을 끼고 버텼다.

다른 분이 베푼 친절의 대가를 아무 관련이 없는 우리가 받아도 되는 걸까 고민하며 가게 문을 나서는데 문득 예전에 본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였다. 학교 선생님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라며 낸 숙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중학생 유진이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고,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갚는 방식으로 반복해 나간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직접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영어 원제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신세 갚기'(Pay It Forward)였다.

비슷한 내용의 우리 전래동화도 있다. 교과서에 실렸던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의좋은 형제'라는 제목의 이야기였다. 서로 어려운 형편이지만 우애가 남달랐던 형제가 살았는데 추수 때가 되어 동생의 살림살이가 걱정이 된 형이 한밤중에 쌀 한 섬을 짊어지고 몰래 동생 집 창고에 옮겨 두었다. 하지만 똑같이 형 걱정을 하던 동생이 자기 쌀을 형의 집에 옮겨 놓는 통에 밤새 쌀가마니만 이 집 저 집을 돌다가 나중에 어둑어둑한 마을길에서 딱 마주친 형제가 파안대소를 했더라는 얘기. 사실 어려서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좀 어이가 없었다. 수학적으로 보자면 쌀 한 섬이 이리저리 오갔을 뿐이니 결국은 아무것도 늘어난 것도 더 나아진 것도 없고 공연히 헛심만 뺀 게 아닌가.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밤새 돌아다닌 쌀가마니가 새로이 만들어낸 것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쌀가마니를 백 번을 옮긴들 단 한 톨의 쌀도 늘어나지 않겠지만, 그렇게 백 번을 옮기면 틀림없이 그사이에는 새싹이 돋듯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사랑'이 태어나고 자라날 것이다.

지나간 이야기들을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제부터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씁쓸하게 막을 내린 새만금 잼버리 이야기다. 지독했던 날씨의 탓이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준비가 대단히 부족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큰 기대를 품고 왔을 아이들에게 정말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시간들이었다. 벌레에 잔뜩 물린 대원들의 종아리 사진을 보며 사랑과 믿음을 키워 주기는커녕 실망과 고통만 안겨 준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부끄러웠던 만큼 이 미안함을 오래오래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 도움을 주는 데 실패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적어도 그에 대한 반성을 잊지 않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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