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진영에 분노 드러낸 광복절 축사
어려움 원인은 보수정치에 대한 실망
진정한 보수가치의 회복부터 시작해야
이런 광복절 경축사는 처음이다. 역대 대통령 축사의 얼개는 같았다. 독립운동의 가치, 우리의 고난 극복사, 통일 비전, 일본의 반성 촉구 등이다. 국민통합 명분의 사면까지 수반하는 터라 분열적 표현은 삼가는 게 관행이었다. 전임조차 이날엔 그럴싸한 통합 메시지를 냈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건 의미 없는 일… (저 문재인 역시) 김대중·노무현만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다”라는 식으로.
그래서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축사는 심히 논쟁적이다. 댓바람에 국민을 공산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세력으로 갈랐다. 이전 ‘반국가세력’의 연장선이나, 우려할 건 그 외연이 모호하게 확대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엔 딱 부러지게 ‘주사파’였다. “진보든 좌파든 협치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닌 반국가세력”이라고 특정했다. 이건 마땅히 수긍할 만했다. 그러다 얼마 전 자유총연맹 행사에선 ‘종전선언과 안보리 제재 해제를 합창하는 가짜 평화세력’으로 넓어졌다. 굴종적 대북정책을 비판해온 입장에서도 명백히 야당 진영을 지목한 이 언명은 자못 위험해 보였다. 이러면 상대편을 다 수구적대세력으로 몰았던 전 정권과 다를 게 뭔가.
급기야 이번에 반국가세력은 ‘위장된 민주주의·인권·진보주의 운동가들인 공산전체주의세력’이 되면서 맹종·추종 세력으로까지 확대됐다. 진보정당과 노동단체 간부 여럿이 북 지령에 따라 간첩 내지 반정부활동을 해온 사실이 적발되긴 했다. 그렇다고 교묘한 위장을 알 리 없었을 그 구성원까지 같은 범주로 묶을 건 아니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도 배치되는 일이다.
짐작은 간다. 그 자신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복원하고 북핵 도발을 억제하는 일에 진력하고 있는데도 국민 열에 여섯일곱이 마음을 열지 않는 데 대한 화가 클 것이다. 화살은 사실을 왜곡 전파하는 적대세력의 준동에 꽂혔다. 반국가세력의 행위 규정에 가짜뉴스와 허위선동을 통한 여론조작이 따라붙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 따위의 거친 언어도 이런 분노의 반영으로 읽힌다.
그의 큰 국정방향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다. 성취를 실패로 전도한 역사인식을 바로잡고, 국가를 왜소화하고 안보를 그르친 대북·대중 관계를 정상화하며, 미일 관계 개선을 통해 실질적 북핵 대응과 함께 서방 선진국그룹 내의 중추국가로 오르겠다는 시도들이다. 대선에서 상당수 중도를 포함한 범보수층에 선택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지층이 쪼그라들었다.
가장 큰 원인은 밖에 있지 않다. 범보수층을 움직였던 진짜 보수다움에 대한 희망이 크게 어그러진 탓이다. 통상의 보수 가치는 안정, 능력, 책임, 법치 같은 것들이다. 이 정부는 이태원·오송 참사, 잼버리 사태 등 국가 현안들을 다루는 데서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고도 “이렇게 훌륭한 장관들” 누구도 책임을 자인하지 않았다. 피아를 구분하는 선택적 법치도 개선되지 않았다. 명백한 보수 가치의 훼손이다. 덧붙여 관용, 품위, 여유 같은 태도도 보수가 상대적 우위에 있다고 평가되는 덕목이다. 날것의 감정을 여과 없이 내보이는 언행 역시 정통 보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국정 의지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이 지리멸렬해진 보수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재론하면 신뢰할 만한 능력과 책임의식, 공정한 원칙에 품격 있는 태도 등이다. 지금 필요한 건 외부를 향한 분노보다 겸허한 자기성찰을 통한 진정한 보수정치의 회복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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