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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 없는 통치 구조의 악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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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꺼내 보는 '다시 본다, 고전'이 두 번째 시즌을 엽니다. 한국상담대학원 대학교 교수이기도 한 진은영 시인과 20년 이상 출판 편집 기획자 생활을 거쳐 온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마다 글을 씁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은 저자 한나 아렌트를 모든 유대인의 적으로 만든다. 저자 역시 유대인일 뿐 아니라 반나치주의자였고 시온주의 운동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그는 나치 정권 수립 이후 독일을 탈출해야 했고, 프랑스를 거치면서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다행히 탈출하여 미국에 자리 잡았고, 유럽유대인문화재건위원회와 주로 유대인 저작물을 다루는 쇼켄북스의 편집자로 일했다. 당연히 그의 친지들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만일 내 삶의 배경이 이랬다면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 끔찍했던 나치의 조직적인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동족을 대표했던 유대인 단체와 지도자에게 있다. 그들이 나치에 협조하고 타협했기 때문에 600만이나 되는 엄청난 수가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혼란스럽기는 했겠지만 절반 정도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유대인위원회 멤버는 특권을 누렸다. 물론 근거를 제시하지만, 이 얼마나 엄청난 발언인가?
이런 내용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대인 국가가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이루어진 나치 전범의 재판참관기에 담은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잘못 해석될 수도 있는 진실’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협박, 회유, 반목을 무릅쓰고 자기가 보고 듣고 연구한 그대로의 진실을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써내려면 도대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전율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1999년까지는 그의 책 어떤 것도 히브리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물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 섭렵과 이전에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유대인 학살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 역시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스탈린주의, 나치즘의 뿌리를 캐는 작업으로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를 차례로 다루고 있다. 이런 연구를 했던 아렌트는 ‘전체주의 정권인 나치에서 고위직으로 일했던 생존 인물’이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되어 이스라엘에서 전범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게 1960년 5월이었다. 당장 예정된 대학 강의를 취소하고, 지식인 독자가 많을 뿐 아니라 영향력이 컸던 잡지인 '뉴요커'에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 참관기를 쓰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을 참관하면서 뜻밖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 재판 자체가 ‘정의의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었다. 검사와 변호인의 역할부터 심각한 불균형 상태였다. 적은 액수의 비용밖에 받을 수 없는 아이히만의 변호인은 조수도 충분히 고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방대한 양의 증거를 제시하는 검찰 조직을 제대로 상대할 수 없었다. 책에는 ‘변호인 측에서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하지 못했다’는 말이 꽤 여러 번 나온다. 변호인은 적은 비용을 보충하기 위해 아이히만이 옥중에서 집필할 책의 판권을 소유하려 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공식 변호인 혼자 등장했고 아이히만은 그의 주 보조원이 되었다. 그랬으니 책을 쓰기는커녕 재판 기간 내내 아주 열심히 일해야 했다.
게다가 검찰 측 요구로 등장한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은 ‘아이히만 재판’ 내용과 상관없는 나치 시절의 수난에 대한 한풀이로 점철되었다. 재판 담당자들은 그 재판을 취재하는 언론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나치의 만행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재판은 쇼와 비슷한 측면도 많았다.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는 독일 국적의 아이히만이 제3국에서 이스라엘 국가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의해 납치되었고, 독일 공무원의 자격으로 행했던 직무에 대한 재판이라는 것이다. 아렌트는 이 재판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유엔총회에서 두 번이나 거부되면서 무산되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렌트가 가장 놀란 점은 체제에 충직했던 출세지향적인 평범한 공무원의 모습을 보이는 아이히만의 언행이었다. 공개된 자료를 모두 검토해 보면, 아이히만은 이런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싶었고,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것 같다. 나는 그 재판이 녹화된 비디오 자료도 구해 보았는데, 아이히만은 자신이 그저 명령에 복종했던 충직하고 건실한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끊임없이, 자신만만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자신이 맡은 일이었던 ‘유대인 수송’밖에 몰랐을까? 그럴 리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국민의 40%가 끔찍한 유대인 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수송 책임자였고 제국보안본부에 소속된 고위공직자였던 그가 ‘최종해결책’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겠는가.
어쩌면 여기에서도 ‘언어의 문제’ 때문에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착각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히틀러가 지시한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최고 고위층은 그와 관련된 언어규칙을 만들었다. 학살은 최종해결책, 살인은 안락사 제공, 완전 소개(疏開)는 특별취급, 유대인 이송작업은 거주지 변경이나 재정착, 또는 동부지역 노동이라고 했으며 유대인은 최고의 생물학적 재료였고 가스실은 의학적 처치였다. 처음에는 이런 언어규칙에 맞추어 대화해야 할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들 이런 언어규칙에 따른 단어만 사용하게 된다. 이런 비밀스러운 어법은 그들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려는 의도보다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범죄행위를 정상적인 지식과 다른 것으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제정신을 유지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아이히만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자신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최종해결책’을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것일 뿐이다. 실제와 다르게 표현하는 이런 종류의 언어가 아이히만의 현실감각을 마비시켜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재판과정에서도 판사들은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상투어를 남발하는 그의 발언에서 공허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필자에게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역설적인 부제의 의미가 바로 이렇게 순진한 모습을 보이며 공허한 상투어로 재판부를 설득하려는 아이히만에 대한 놀람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했던 한 성직자는 그가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발표했다. 그가 저지른 악은 악마성이 아니라 감각을 마비시키는 비현실적인 언어로 구축된 구조 속에서 자신의 행위 결과에 대한 생각 없이 상부 명령에 따라 성실하게 일한 결과였던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본문을 마무리하면서 딱 한 번 감탄사처럼 등장한다. 저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를 걱정했던 것 같다.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이 책은 악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도 아니다. 모든 재판의 초점은 개인의 역사, 특질과 고유성, 행동 유형, 상황 등 항상 독특성을 지닌 살과 피를 가진 한 인간인 피고의 인격에 있다."
이 책의 내용은 특수한 상황에서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 범죄자에 대한 르포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가 이 책을 발표한 다음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해와 용서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 심각한 범죄일수록 그 정체를 분명히,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올바른 해결책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 범죄가 용서된다는 뜻은 아니다. 설사 아이히만이 통치자 없는 통치 구조인 관료체제 안에서 톱니바퀴의 이와 같은 역할밖에 한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범죄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론은 추상적이며 편협하지만 사건은 구체적이고 종합적이다. 저자는 그 전말을 다룬 자세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나름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문학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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