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게 거북이 주행…한국과 180도 다른 일본의 도로문화

입력
2023.08.19 04:30
수정
2023.08.19 09:57
12면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도로·교통문화는 승용차에 대한 개념부터 자동차 운전방식, 운전자들의 성향, 보행자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를 보인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국과 일본의 도로·교통문화는 승용차에 대한 개념부터 자동차 운전방식, 운전자들의 성향, 보행자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를 보인다. 일러스트 김일영

◇ 한국과 일본의 운전 스타일은 다르다.

단기 주재원으로 일본에 와 있던 친구가 “중고차라도 한 대 마련할까?”라기에, “당분간이라도 차 없이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만류했다. 일본은 도시나 시골 가릴 것 없이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다. 도요타, 닛산 등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자동차 메이커의 본고장이다. 일본에서 자기 차를 굴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말렸던 데는 이유가 있다. 짧은 체재 기간 중에 일본의 쾌적한 교통 시스템을 만끽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의 거칠고 경쟁적인 운전 스타일에 익숙한 친구가 자칫 일본에서 ‘난폭 운전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도 즐긴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운전대를 잡고 꽤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의 도로 문화가 다르다고 실감했다. 일본의 자동차는 운전석이 오른쪽이다. 영 연방 국가들처럼 도로도 자동차는 왼쪽에서 주행하는 시스템이어서, 좌우 반전된 운전과 도로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주목하고 싶은 차이점은 운전 스타일이다. 일본 운전자들은 성급하지 않고 점잖다. 도심에서는 느릿느릿 거북이 운전이고, 차로 변경도 자주 하지 않는다. 쌩쌩 달리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운전자들이 십중팔구 답답해할 스타일이다. 또 자동차보다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것이 기본 매너이다. 좁은 이면 도로에서는 무조건 저속 운행하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일단정지하는 번거로운 규칙도 잘 지킨다. 새치기를 하거나 마구잡이로 끼어드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일본에도 간혹 규범을 어기는 운전자도 있고, 고속도로에서 총알처럼 내달리는 스피드 광도 많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모두 운전 경험이 있는 베테랑 운전자로서 단언한다. 안전 운전 습관이 정착된 곳은 한국보다 일본이다.

처음에는 일본의 보행자들이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는 줄 알았다. 한국의 보행자들은 횡단보도 앞에 서 있어도 자동차에게 양보받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스스로 주변을 살피고 안전을 도모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일본의 보행자들은 자동차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식이 약하다. 횡단보도에서 부모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지 않거나, 주변을 잘 살피지 않은 보행자가 차 앞으로 불쑥 끼어드는 광경을 보고, 마음속으로 ‘저런, 저런!’을 외친 적도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사고로 번지는 경우는 단 한번도 못 보았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속도를 낮추고, 보행자에게 항상 길을 양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낮다. 각국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을 비교한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10만 명당 사망자가 2.4명으로 44개국 중 42번째로 적었다. 참고로, 같은 자료에서 한국은 10만 명당 7.5명으로, 브라질(16.6명), 미국(13.8명), 콜롬비아(12.7명) 등보다는 적게 나타났지만, 44개국 중 14번째로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은 나라로 나타났다.

◇ 자동차 보유에 대한 인식도, 부담도 다르다.

자동차 보유에 대한 인식도 한일 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가 재력을 과시하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듯하다. 이런 인식이 고가의 외제 자동차로 재력을 과시하는 풍조를 부추기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자동차는 그저 개인의 기호와 취향을 반영한 기호품일 뿐이다. 부자일수록 고급 자동차를 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교통수단을 애용하는 ‘뚜벅이족’ 재력가도 있고, 반대로 오로지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고급 자동차를 소유하고 공들여 관리하는 자동차 마니아도 많다. 한 친구는 20년이 넘는 구식 자동차가 큰 자랑이었다. 오래된 연식을 개인적인 취향에 맞게 정성껏 튜닝해 멋스러운 자기만의 애차로 개조했다. 어떤 동료는 디자인이 세련된 멋쟁이 프랑스 차에 ‘꽂혀서’, 한 대는 운행용, 또 한 대는 고장이 났을 때 부품 조달용으로 같은 모델을 두 대 갖추어 놓고 있었다. 외제차보다 일제 국산차를 선호하는 풍토 덕분인지, 자동차 관련 제품이나 서비스도 풍부하다. 일본은 남다른 자동차 취미를 추구하기에 꽤 좋은 환경이라고 느꼈다.

그렇다면 일본이 자동차로 생활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골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길은 좁고 미로처럼 복잡한 데다 주차 공간은 만성적으로 부족하다. 도심의 유료 주차장 이용료나 유료 도로 통행료는 한국의 대여섯 배 수준이다. 자동차 보유와 관련한 제비용도 한국보다 꽤 비싸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주차 공간을 정식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자동차 등록이 불가능하다. 주차장과의 계약서, 주차장 소재지의 위치와 지도 등의 증빙을 제출하지 않으면, 아예 자동차 번호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동 주택 입주자들에게 주차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본에서는 맨션(한국의 아파트와 유사한 공동 주택)에 입주하는 경우 주차장을 별도 계약하고 매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대도시에서는 맨션에 지불하는 주차장 사용료가 매달 3만 엔(25만 원 정도)에 육박한다. 도시 거주자의 자가용 보유율이 높지 않은 것도 이해할 만하다. 실제로 도쿄에서 규모가 있는 단지에 살았지만, 지하 주차장에는 계약이 되지 않은 빈자리가 늘 남아 있었다. 자동차를 보유하지 않은 가구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도시는 자동차 운전자보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보행자가 편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안전 운전의 문화는 일본에서 배워야

일본의 대도시에 비하면, 한국은 자동차 생활의 이점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사방팔방으로 도로가 널찍하게 뻗어 있고, 도심에도 비교적 저렴한 공영 주차장이 있다. 레스토랑 등 상업 시설에서 주차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리 운전 서비스도 잘 마련되어 있어서 음주운전의 걱정도 덜었다. 교통량이 많아서 도로가 막히는 불편은 피할 수 없다지만, 쾌적한 자동차 생활을 위한 인프라와 서비스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준 높은 도로 문화가 정착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과격하고 거친 운전 스타일 때문에 보행자들은 위협을 느낄 때가 잦다. 과속하지 않기, 횡단보도 근처에서 속도 줄이기, 무리하게 끼어들지 않기 등 안전 운전을 위한 규범은 한국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다. 하지만, 이를 잘 지키는 운전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교통규칙을 곧이곧대로 지키면 앞뒤가 꽉 막힌 초보라는 오해를 받는다. 어느새 일본의 점잖은 운전 스타일에 익숙해진 탓에, 한국 운전자들의 거친 운전 습관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주 차로를 변경하는 곡예 운전에, 앞차와 유지하는 안전거리 공간에 염치없이 끼어든다. 정규 속도를 지키는 데도 뒤차가 경적을 울리거나 위협적인 운전으로 불만을 표한다. 일본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민폐 운전자를 한국에서는 매일같이 조우한다. 적어도 안전 운전의 문화라는 점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일본인 친구가 “서울에서는 자동차들이 정말 빨리 달린다”며 혀를 내두를 때마다 내심 민망하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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