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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취재원 보호, 언론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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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제보자, 내부 고발자를 뜻하는 언론 용어 '딥 스로트'는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에서 유래했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실명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권력 중심부 인사의 도움으로 완성한 기사로 리처드 닉슨(1913~1994) 전 미국 대통령을 사임에 이르게 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상무이사였던 하워드 사이먼스는 이 비밀스러운 취재원에게 '딥 스로트'라는 별칭을 붙였다.
딥 스로트의 정체는 보도 후 33년이 흐른 2005년에 공개됐다. 주인공은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을 지낸 윌리엄 마크 펠트(1913~2008). 구순을 넘긴 펠트의 가족이 잡지 '베니티 페어'를 통해 워터게이트 보도의 정보원이 펠트임을 밝히자 우드워드는 곧바로 회고록을 출간해 자신과 펠트의 관계를 소상히 밝혔다. 그렇게 2005년 출간된 우드워드의 '시크릿 맨'이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의 민주당사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남성 5명이 체포된 게 발단이었다. 이 사건은 닉슨의 재선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사건의 불씨가 점점 커지며 배후에 닉슨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닉슨은 결국 1974년 8월 상원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책은 우드워드와 펠트의 길고 복잡한 관계와 첩보 영화 뺨치는 펠트의 정보 제공 과정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우드워드는 해군 중위 시절 백악관에서 펠트를 우연히 처음 만났다. 군복무 후 학업을 중단하고 지역 주간지에서 일을 시작한 우드워드는 펠트와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다 1971년 9월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한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드워드는 화분에 빨간 깃발을 꽂아 신호를 보내는 등 펠트와 비밀스럽게 접촉했다. 당시 백악관은 딥 스로트의 정체를 거의 확신하고 있었고, 워터게이트 보도의 취재원을 밝히려는 많은 매체의 시도가 있었지만 우드워드는 철저하게 함구했다.
정보원 보호에 대한 언론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저자는 수십 년간 비밀 유지 의무를 지켜 냈지만 "마크 펠트를 이용했다"며 "우리는 (사건의) 동기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동기를 계속 파고들 것"이라며 "역사엔 최종 원고란 없다"고 덧붙였다. 출간 18년 만에 국내 독자와 만나게 됐지만 공익 제보자는 보호되지 않고 익명의 '핵심 관계자'만 남발되는 오늘날 언론 환경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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