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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개발 경쟁 뛰어든 ‘오일 머니’… “사우디·UAE, 엔비디아 칩 수천 개씩 사들였다”

입력
2023.08.16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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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빅테크 이어 대량 구매 나서
엔비디아, 'AI 필수' GPU 시장 장악 중
"독재 정권 악용 가능성" 우려도 제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왼쪽)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 왕세자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다. 제다=로이터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왼쪽)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 왕세자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다. 제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인공지능(AI) 기술 개발 경쟁에 중동의 ‘오일 머니’까지 가세했다. 공급 부족 상태인 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 확보전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걸프만의 양대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도 대량 구매에 나선 것이다. 엔비디아는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사우디는 킹압둘라대학을 통해 엔비디아와 최소 3,000개의 H100 칩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주문 물량은 올해 연말까지 사우디에 인도될 예정이다. 지난해 출시된 H100은 하위 버전인 A100보다 학습 속도가 9배 향상된 초고성능 칩으로, 한 개당 가격도 4만 달러(약 5,300만 원)다. 사우디로선 총 1억2,000만 달러(약 1,600억 원)를 쏟아부은 셈이다. UAE도 자체 개발한 개방형 대규모 언어 모델 ‘팰컨’의 학습을 위해 엔비디아 반도체 수천 개를 사들였다.

"AI 개발 속도 내자" 산유국의 야심 찬 계획

올해 2월 1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살만 빈 에브라힘 칼리파(왼쪽)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 압둘 라지즈 빈 투르키 알 파이살(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등과 함께 2027 아시안컵 개최지 발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마나마=AFP 연합뉴스

올해 2월 1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살만 빈 에브라힘 칼리파(왼쪽)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 압둘 라지즈 빈 투르키 알 파이살(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등과 함께 2027 아시안컵 개최지 발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마나마=AFP 연합뉴스

중동 부호국들이 엔비디아 칩 확보 전쟁에 뛰어든 건 더 늦기 전에 AI 개발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 급등이 안겨준 막대한 수익도 든든한 밑천이 됐다. 이미 A100을 200개 이상 확보한 사우디 킹압둘라대학은 슈퍼컴퓨터 ‘샤힌 III’ 연내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고, 챗GPT에 쓰인 소프트웨어와 유사한 자체 대규모 언어 모델도 조만간 구축할 계획이다. 2017년 AI 관련 부처를 신설한 UAE 정부도 “이번에 구입한 칩으로 더 많은 대규모 언어 모델 관련 애플리케이션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준비하겠다”는 방침이라고 FT는 전했다.

중국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바이두, 바이트댄스 등 중국 4대 빅테크는 연내 10억 달러, 내년 중 40억 달러에 달하는 엔비디아 반도체를 주문할 계획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 항목에 아직 포함되지 않은 고성능 칩을 선점하려는 차원이다.

글로벌 경쟁이 가열되면서 엔비디아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5월 반도체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338조 원)를 돌파했고, 이날도 주가가 7% 이상 급등했다.

독재정권 'AI 악용 가능성' 우려도

그러나 악용 가능성 우려도 상당하다. AI 발전 속도가 빨라지는 데 비해, 이를 규제할 글로벌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FT는 “사우디와 UAE가 AI 분야 리더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산유국 독재 지도자들이 이 기술을 오용할 위험도 제기된다”고 짚었다. AI 기술을 활용한 사이버 해킹으로 눈엣가시인 인권단체나 언론인들을 불법 감시하는 등 독재 정권의 손쉬운 통제 수단으로 삼으려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AI 발전이 민주주의를 저해할 것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50년 이상 AI를 연구한 ‘AI의 아버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지난 5월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핵무기와 달리 AI는 비밀리에 연구할 경우, 외부에선 이를 알 방법이 없다”며 “AI 기술이 적용된 ‘킬러 로봇’이 현실이 될까 두렵다”고 밝힌 바 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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