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난동’ 범인들 검거 피하지 않아
엄벌 두려워하지 않으면, 예방효과 미미
실업 등 수치심 유발 줄일 노력도 병행을
“열심히 살아도 안 되더라,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지난 7월 21일 신림역 ‘묻지마 난동’ 피의자 조선이 범행 후 경찰에 한 진술이다. 이후 8월 3일 분당, 4일 대전 한 고등학교, 8일 대구 수성구 학원가 등에서 비슷한 사건이 잇따르며,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에 대한 공포가 순식간에 사회 현상이 됐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초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국회에서도 여ㆍ야가 앞다퉈 강경 처벌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흉악범죄자에 대한 경찰 물리력 행사 면책권, 판사가 중증 정신질환자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등이다.
흉악범 처벌 강화는 분노한 민심을 달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발 방지는 또 다른 문제다. 신림역, 분당 사건 피의자는 모두 검거를 적극적으로 피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았거나,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범인이 처벌을 염두에 두지 않는데, 처벌 강화만으로 비슷한 범죄 예방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묻지마 난동을 예방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 미국 정신의학자인 제임스 길리건 하버드대 교수는 교도소에서 25년 동안 연구해 교도소 내 살인ㆍ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그는 살인 등 흉악범죄의 뒤에는 반드시 수치심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길리건은 “수치심은 자부심 또는 자존감 같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수치심을 느낀) 사람들이 남을 해치는 이유는 더 약하고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남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1일 검찰 발표에 따르면 조선은 여러 번 실직하고 실연하는 등 좌절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범행 전 8개월간 하루 종일 폭력적 온라인 게임에 매달렸다. 그러다 마지막 소통 공간인 게임 커뮤니티에서 모욕 혐의로 고소당하자, 소년원 시절 격리 기억이 떠오르며 압박감을 느낀 것이 범행을 촉발한 방아쇠가 됐다. 분당 사건 피의자 최원종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중학교까지 성적도 우수했다. 하지만 특목고 진학에 실패한 후 대인기피증으로 고교를 중퇴하고 방황을 거듭하다 가족과 떨어진 채 홀로 지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극심한 고립 생활 속에 2020년 조현병 직전 단계 판정까지 받았으나, 치료를 거부해 왔다. 조선, 최원종 모두 수년간 좌절과 고립에 고통받았다. 결국 그로 인한 수치심은 자신의 몫이 아니며 남의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칼을 휘둘렀던 것이 아닐까.
물론 좌절하고 고립된 사람들이 모두 남을 해치지는 않는다. 또 이들의 흉악범죄를 사회와 가정 탓으로 돌리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 하지만 사회에도 일정 책임이 있다. 길리건은 “결핵균 보균자라고 모두 결핵에 걸리지 않지만 결핵균이 없으면 결코 결핵에 걸리지 않듯이, 수치심이 폭력의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꼭 있어야 할 병원체”라고 수치심과 폭력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수치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약하고 무능하다는 증거로 여겨, 숨기려 하므로 타인은 알기 힘들다. 오래 쌓인 수치심은 사소해 보이는 계기로 폭발해 ‘묻지마 난동’을 사전에 감지하기도 어렵다.
예방법은 결국 사회 내 수치심 유발요인을 낮추는 것이다. 길리건은 대표적 요인을 실업으로 지목한다. 차별, 소득격차 확대도 원인이다. 자살을 ‘수치심을 못 견뎌 스스로를 살해한 것’으로 본다면 자살률도 밀접한 지표다. 우리나라는 높은 청년 실업률, 확대하는 소득격차, 세계 최고 수준 자살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묻지마 난동’을 사회문제로 여기는 시각 전환부터 이뤄져야 재발방지의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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