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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와 '엑셀 팡션'

입력
2023.08.15 09: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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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AI 서류심사' 캠코에 개선요구
인공지능 못 믿으면 알고리즘 개선해야
사람 재검은 엑셀 말고 계산기 쓰란 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김 대리, 너무 엑셀 '팡션(함수·Function)'? 사용하지 마세요."

몇년 전 '엑셀 팡션'이라는 은어가 유행했다. 직장인 필수 프로그램인 엑셀 대신 계산기나 암산으로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라고 지시하는 '구식 상사'를 비꼬는 말이다. 이들 상사는 "편리하지만 위험하다"거나 "손으로 검수해야 정확하다"는 등 경험적 가르침을 주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세상의 김 대리들은 본인보다 뛰어난 후배, 익숙지 않은 새 지식을 경계하는 소위 '꼰대'로 본다.

금융위원회가 14일 금융공공기관에 대한 채용실태 정기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서류심사 시 전형위원 및 감사부서 입회담당자 미참여'가 지적돼 개선요구 조치를 받았다. 채용의 첫 관문인 서류심사에 감독관을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황당한 사건 같지만, 사실 캠코는 사람이 필요 없는 인공지능(AI) 서류심사를 진행했다. 매 공채마다 밀려오는 지원자 7,000여 명에게 필기전형 기회를 최대한 부여하기 위해 2021년부터 시행한 제도다. 문제로 지적된 AI는 표절위반 등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프로그램이었다. 논문 표절심사에 흔히 쓰는 '카피킬러'와 유사하다.

금융위 조치는 'AI 못 믿겠으니 사람이 재검하라'는 지시다. 실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인공지능을 100% 다 믿을 수 없진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조치 근거는 채용 과정에 인사부서와 감사부서가 동시에 입회하고 서명을 하게 돼 있는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이다.

물론 AI는 완전무결하지 않다. 그렇기에 캠코도 필기 후 사람이 참여하는 '면접' 절차를 거친다. 그럼에도 AI가 걸러낸 서류전형을 다시 사람에게 일일이 확인하라는 것은 '컴퓨터를 못 믿겠으니 계산기를 두드리라'는 식의 '엑셀 팡션'이다. AI가 불안하다면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게 먼저다. 지침이 구시대적인지도 자문해야 한다.

결국 캠코는 시정하기로 했다. 효율적 인적심사를 위해 AI를 도입한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비효율적 업무만 하나 더 생긴 꼴이다. '엑셀 팡션'은 2023년에도 목격된다. '디지털플랫폼정부'를 실현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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