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변호사 3만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지난 칼럼에서 상가임대차법상 10년의 계약갱신요구권을 주장하며 건물 매수인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임차인 사례를 소개했다. 보증금 1억 원, 월세 500만 원에 일반 사무실 용도로 임차해 1년을 지낸 임차인이 ‘합의금 20억 원’을 요구하며 집요하게 사업 진행을 방해한다. 건물 매수인은 매달 막대한 금융 비용을 지출하는 상황에 몰렸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유사한 사례가 과거에 있었다. 비교해서 생각해 보자.
2000년대 초중반, 검찰은 사실상 사문화됐던 형법 제349조 ‘부당이득죄’를 들고 나와 이른바 ‘알 박기’를 본격적으로 수사ㆍ기소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주택 개발 사업 지역 내의 토지 소유자가 토지를 매도하지 않으면서 사업을 방해하다가 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매각하는 것이 사회 문제화됐다.
형법 제349조 제1항은 ‘사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을 취득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부당 이득죄’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 많은 사례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현저하게 부당한 이득의 취득’이란, 단순히 시가와 이익과의 배율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고 구체적ㆍ개별적 사안에 있어서 일반인의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알 박기를 위해 토지를 매수했거나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며 사업을 추진하도록 한 뒤 갑자기 뒤늦게 협조를 거부하는 등 사업자가 궁박한 상황에 빠지게 된 데에 적극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정도가 돼야 비로소 부당이득죄 성립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단순히 개발 사업이 추진되기 오래전부터 사업부지 내 토지를 소유하던 사람이 이를 매도하라는 사업시행자의 제안을 거부하다가 수용하는 과정에서 큰 이득을 취했다는 사정만으로 함부로 부당이득죄의 성립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시가의 40배가 넘는 대금을 받았는데도 부당이득죄 성립을 부정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알 박기’라는 고의적인 투기 세력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췄고, 그 외에 주택 개발 사업이라는 ‘상황’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계약을 체결한 행위 자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이 규정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사적 계약자유의 원칙을 고려하여 범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형사책임과는 별론으로, 하급심 민사 법원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대방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하여 시세보다 지나치게 과다한 금액으로 매도한 경우에는 그 자체가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국회는 2005년 주택법을 개정해 일정 면적 이상을 확보한 사업시행자는 토지소유자에게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 알 박기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했다. 그리고 ‘알 박기가 주택 분양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매도 청구에 관한 조문은 점점 더 사업시행자에게 유리하게 변화됐다.
그러자 이제는 반대로 사업부지 내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침해가 문제됐고, 매도 청구권에 관한 주택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민간 주택건설사업 시행자에게 ‘소유권 강제 박탈 권한’을 너무 넓게 인정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9년 위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토지’ 재산권은 생산이나 대체가 불가능하여 공급이 제한되어 있고, 국민경제 측면에서 특수성이 있다는 점, 주택건설사업은 공공성이 강하다는 점이 고려된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보려는 사례처럼, 1년밖에 안 된 건물 임차권을 근거로 무려 33년 치 월세(20억 원)를 합의금으로 요구하는 임차인의 행위를 과연 우리 법은 어떻게 판단할까? 다음 편에서 마지막으로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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