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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피크 코리아' 현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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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세대가 정치적 화제에 오르내리는 건 국제사회에서 흔한 일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87)는 2010년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녹색의 집’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페루의 저항작가다. 소설로 은폐된 현실의 가면을 벗겨온 그가 현실에 뛰어든 결과는 소설과 달랐다. 미국 시사잡지 뉴요커는 젊어 급진 좌파였던 요사가 오래전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최근엔 남미의 권위주의적 극우 운동을 지지해 충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두 극단의 조우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그가 극우 지도자들과 개인적 만남 이후 심경 변화를 일으킨 건 불편한 현실이다. 미국에선 올해 여든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넘어지고 동문서답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기억력을 잃고 있는 아흔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근 1년째 투표권 행사를 못해 민주당이 속을 끓이고 있다.
최근 대한노인회 회장이 여명(餘命) 논란으로 사과 방문한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앉혀 놓고 사진 뺨을 때렸다. 우리 사회가 노인을 공경하는 이유 가운데 세대 이해, 정치 이념에서 떨어져 있는 사회의 어른이란 기대가 크다. 국가와 후손의 미래를 위해 손해 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분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노추에 가까운 요사, 파인스타인의 행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진 뺨은 그런 기대에서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나 어른의 사회적 역할을 환기시킨 의외의 퍼포먼스이기도 했다. 미래로 가는 길이 사방으로 막혀 파열음이 커진 지금이야말로 회초리 드는 어른들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침 작가 김훈(75)은 노인 나이에 들어서도 시대의 표정을 잃지 않는다.
그는 최근 언론 기고에서 서이초 사태 배후로 지목된 학부모 ‘악성 민원’의 본질이 한국인 DNA에 유전되고 있는 ‘내 새끼 지상주의’라고 규정했다. 조국 사태를 소환한 것에 논란이 있지만 거기에 그의 말을 잡아둘 일은 아니다. 작가 논리를 빌리면 우리 사회 문제의 본질은 분명해 보인다. 그 학부모, 자식들이 집단을 이룬 그들만의 지상주의를 펴는 데에 있다. 내 새끼 지상주의를 드러낸 무대가 권력층, 부유층 밀집지역인 데서 그 지상주의를 완성시킨 것이 무엇일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에서 공직자들의 무책임 행태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공직이 권한에 비례해 책임지는 자리였지만 옛말이 되고 있다.
반목사회, 분노사회가 화두가 된 것 역시 그런 결과다. 내면이 불안, 분노로 가득 차 벌어지는 광기의 사건과 사회적 참사들로 시절이 어수선한 데도 정치의 실패는 반복된다. 운명 예언가들의 출몰도 권력층이 소명과 책임에 단속되지 않는 데 연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이 터지면 최고조 발언이 뒤덮어도 그것이 실제 의지인지 책임을 감추려는 말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규율, 책임의 불모지대에서 일반인은 공포를 달고 산 어느 종교개혁가처럼 철야기도에 매달려야 할지 모른다.
이런 사회, 정치에서 배제되어 가장 무력하고 무시당하는 존재가 청년들이다. 자살률이 2018년부터 다시 증가해 OECD 회원국 1위가 된 배경에 20, 30대 여성들이 있다. 최근 잇단 묻지마 칼부림 사건 등의 범인이 20, 30대 남성들인 것도 우연으로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우울증, 폭력성향으로 치부하고 법을 엄정히 집행해 무서운 공권력이 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을 이처럼 좌절과 분노로 몰고 간 것은 지금까지 산업화, 민주화를 묶어 온 우리 사회의 끈이 풀리고 있는 위험의 징후다. '인구 정점론'보다 먼저 오고 있는 ‘피크 코리아’ 현상에 새로운 대응이 없다면 인구문제보다 더한 위기가 올 수 있다. 이번에는 이런 사회, 청년들을 위해 어르신들이 손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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