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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의 선택적 원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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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재임 중) 단 한 건도 금품과 관련된 부정비리가 없었던 청와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썼다. 국민의힘은 자가당착에 빠진 책방 주인의 앞뒤 안 맞는 망언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념이나 감정에 부합하는 내용만 기억하고 어긋나는 정보는 배제하려는 '선택적 기억'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택적 침묵'도 유행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은순씨가 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로 법정구속되자 침묵했다. 현직 대통령 장모가 구속된 적은 처음이지만, 윤 대통령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의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과나 유감 표시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유리할 때만 입장을 밝히고 불리하면 침묵한다"고 비판했다.
선택했을 뿐인데 선택만 하면 욕을 먹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선택'이란 말이 붙으면 어느새 부정적 의미가 덧붙여지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이 단연 '선택'을 타락시킨 일등공신이지만, 검찰도 '선택'을 가치 중립적 용어로 회복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다.
검찰은 선택적으로 수사하고 선택적으로 기소하고 선택적으로 특수활동비를 사용한다. 검찰 수뇌부는 이런 주장에 대해 정치권에서 부당하게 수사팀을 공격하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하지만, 그간 검찰의 행태를 보면 선택적 항변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성격이 비슷한 사건인데도 누구는 탈탈 털고 누구는 덮어버렸다. 검찰청에 계류된 수많은 사건 중에서 왜 이 시점에 이 수사를 해야 하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수사 대상을 기소할지 안 할지, 기소한다면 언제 할지, 기소 범위도 마음대로 정한다. 증거와 법리에 따라 결정했다고 말하지만, 그것만큼 공허하고 입에 발린 소리도 없다.
압권은 특수활동비다. 범죄첩보 수집과 비밀을 요하는 활동을 하지도 않으면서 그 많은 국민 혈세를 용돈처럼 현금으로 받아가고 소고기 사먹고 회 사먹고 폭탄주 마시는 데 쓴다. 특활비 규모만 보면 검찰총장은 4대 그룹 총수 부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목적 외 용도로 사용하는 게 분명한데도 검찰 구성원 누구도 횡령 혐의로 수사받지 않는다. 다른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돈을 썼다면 감옥행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택적 횡령'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선택'이란 말이 오염된 이유는 선택 자체보다는 납득할 만한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유불리나 네편 내편을 앞세우는 리더에게 원칙이 파고들 여지는 없다. 그런 정치인의 선택에 국민을 위한다는 고귀한 가치가 있을 리 없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기소한다는 검찰도 속을 들여다보면 일관성이 없다. 그러니 무슨 선택을 하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 그래서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의 선택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당시 척화파들은 명나라에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임금까지도 옥쇄해야 한다고 했지만, 최명길은 명과의 의리는 지키되 종묘사직과 백성을 먼저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불가피하게 굴욕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다. 한명기 교수는 그런 최명길을 세상 사람 모두를 살렸지만, 모두에게 비난받았던 '선택적 원칙주의자'로 칭했다. 누군가를 죽이는 데 몰두하는 혼탁한 시대, 국민 모두를 살리고 '선택'의 가치를 회복시켜 줄 지도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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