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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만끽한 고립의 시간

입력
2023.08.10 22:00
27면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영화관 모습.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영화관 모습.

매주 월요일마다 집 근처 영화관에 간다. 휴대폰 하나로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번거롭게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고립된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데,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혼자 있을 땐, 습관처럼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쥐어 든다. 누워서 멍하니 짧은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는 게 만족스러울 리가?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순 없다’는 마음으로, 근처 카페에 가도 마찬가지다. 노트북과 책을 챙겨 가서도, 10분마다 한 번씩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전해지는 타인의 일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일, 전쟁과 기후 위기 등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까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물리적으로는 혼자 있지만, 쉼 없이 세상과 연결된 느낌이다. 휴대폰과 거리를 두면 될 일이지만, 개인 의지만으로 휴대폰과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 않다. 결국 반강제적으로 휴대폰을 보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인 영화관으로 향한다.

영화관에 도착했다. 광고가 나오는 와중에도 할 일 없이 휴대폰을 본다. 10분 동안 멍하니 광고를 보는 일도 쉽지 않다. 영화 시작 안내가 나오고 그제야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넣는다. 고립된 공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움을 느낀다. 속 시끄러운 세상일도, 고민과 스트레스도 잠시 잊고 영화 속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저 장면들을 대역 없이 했다고?’, ‘전 세계가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쳤는데 이걸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게다가 동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니’, ‘내가 염정아 배우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극 중 김혜수 배우처럼 나도 전 재산을 맡길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던 걸까?’ 영화 속 배우들 캐릭터에 몰입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혹은 앞으로도 경험해 볼 것 같지 않을 삶을 잠시나마 살아본다. 그러다 보면, 어지러운 세상사와 삶의 고단함은 잠시 잊게 된다.

고립된 공간에서 경험하는 자유로움과 이야기에 푹 빠져 보내는 시간은 꽤 만족스럽다. 1분짜리 영상 콘텐츠, 자극적인 짧은 글에 익숙해져 지루함을 못 견디는 사람에서, 2시간이나 앉아 휴대폰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게 뿌듯하기까지 하다. 10년 전만 해도 한 편의 영화를 보고, 한 권의 소설책을 진득하게 즐기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 모든 게 힘들어진 걸까? 아마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면서부터겠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지고 있지만, 스마트폰에 시간과 집중력을 빼앗긴 채 살고 있다. 자각하면서도, 손에서 놓질 못하고, 멀어지고 싶어서 애를 쓰는 아이러니한 상황.

여름방학 시즌이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로, 영화관에서 일하는 직원들로 북적였는데, 이제는 제법 한산해졌다. 굳이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휴대폰 하나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게 많은 세상이니까. 영화관은 넘쳐나는 콘텐츠 속에서 이제는 자발적 고립과 한 편의 이야기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굳이 가는 곳이 됐다. ‘10년 후에도 영화관은 존재할까? 2시간 동안 하나의 영화를 온전히 즐기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겠지?’ 생각하며 오늘도 영화관으로 향한다.


김경희 오키로북스 전문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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