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가 지역을 바꾸자 사람들이 찾아왔다

입력
2023.08.19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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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극·장: #4 경남 남해군 상주면]
인구·학생수 급감, 상주중 대안학교 전환 위기 돌파
상주초 '작은 학교 살리기 선정', 인구 증가에 한몫
학부모 중심 협동조합, 건강한 마을 만들기 '한마음'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 상영합니다.

남해상주초등학교와 상주중학교 학생들은 해마다 동고동락협동조합의 '다랑논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해 모내기와 추수 등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제공

남해상주초등학교와 상주중학교 학생들은 해마다 동고동락협동조합의 '다랑논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해 모내기와 추수 등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제공

경남 남해군 상주면엔 전국 최고의 피서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상주은모래비치해수욕장’이 있다. 이름 그대로 은빛을 띤 유난히 곱고 하얀, 반달 모양의 백사장이 특징이다. 아름다운 이름만큼 이나 실제 풍경도 그림 같은 해수욕장을 보유하고 있건만, 상주면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의 파고를 피하지 못했다. 마을에 있는 남해상주초등학교와 남해상주중학교도 학생이 급속도로 줄며 전교생이 한때 각각 36명에 그쳐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 2015년, 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마을 분위기를 바꾸는 변화가 시작됐다. 폐교 위기의 상주중이 일반학교에서 대안학교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경남 최초의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 선정 이후 전국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유입이 잇따랐다. 학생수가 늘었고, 자연스럽게 학부모들이 상주로 거주지를 옮기며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을 연결 고리 삼아 학교와 마을을 동시에 살린 상주면은 이제 ‘귀촌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상주중학교의 기적

2015년 경남 최초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로 전환한 남해상주중학교. 지역-학교-주민의 지속가능한 상생모델을 구축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남해=이동렬 기자

2015년 경남 최초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로 전환한 남해상주중학교. 지역-학교-주민의 지속가능한 상생모델을 구축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남해=이동렬 기자

상주은모래비치 해변과 맞닿아 있어 전국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상주중은 1953년 개교해 한때 전교생 수가 530명에 달하는 제법 큰 학교였다. 그러나 농어촌 인구 감소와 맞물려 학생 수가 30명대로 급감하며 폐교 위기를 맞았다.
학교 측은 고육지책으로 다문화학교, 야구부 육성학교, 자율학교, 축구부 육성학교 등을 추진했으나 학생 수를 불리지 못했다. 마지막 카드가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로의 전환이었다. 2015년 1월 교육부로부터 경남 첫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로 승인받아 이듬해 신입생을 맞았다. 그해 4월에는 기숙사 동을 건립했다. 해를 거듭하며 2018년 학년당 2학급씩 전체 6학급이 된 이후 지금까지 전교생 90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주민이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학생ㆍ학부모ㆍ교사가 한데 모여 아이디어를 모으는 회의 명칭은 ‘완두콩(완전 두근두근 콩닥콩닥의 머릿글자)’이다. ‘교학상장(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이끌어 주며 성장한다)’의 모범인 셈이다.

학생들은 일반적인 중학교 과정 외에 이동 학습과 모내기, 수확, 떡가래 나눔 등 ‘다랑논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교내 매점도 학생들이 직접 운영한다. 모든 계획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세우고 교사는 뒤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올해 1학기에 1ㆍ2학년은 2박 3일간 지리산을 종주했다. 2학기엔 1학년은 남해바래길 걷기를 소화할 예정이고, 2학년은 일본 현장학습을 갈 계획이다. 3학년은 교류협약을 맺은 몽골 뉴에라 국제학교로 떠나 몽골에서 10박 11일 이동 학습을 한다. 또 전교생은 매년 한 차례 시집을 내고, ‘솔바람 바다학교’란 학교소식지도 두 차례 발행한다. 3학년은 졸업에 앞서 매년 12월 학부모들이 참여한 가운데 1인당 10분가량의 졸업논문 발표회를 갖고, 졸업논문 작품집도 낸다.

학부모들도 당당히 교육의 한 축을 맡고 있다. 학부모위원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학부모들이 직접 졸업 여행을 떠나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 등 각자 소회와 학교의 발전방향 등을 담아 ‘학부모 문집’을 낸다.

이런 변화는 근처에 있는 상주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상주초 출신에게 상주중 우선 지원권을 주면서 자연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상주초가 2020년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이 행정ㆍ교육자치 협업사업으로 추진한 ‘작은 학교 살리기’에 선정된 것도 희소식이었다. 학교 인근에 임대용 공공주택(5가구)을 짓고, 남해군이 전입 학부모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면서 2021년 3월 23명에 불과했던 학생 수가 현재 57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민-관-학' 상생모델 구축

동고동락협동조합은 지속가능한 자립경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2021년 상주면 1호 빵집 '마을빵집 동동'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마을빵집 동동'은 인공색소 등을 쓰지 않고 천연발효종을 이용한 건강한 빵을 만들어 지역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남해=이동렬 기자

동고동락협동조합은 지속가능한 자립경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2021년 상주면 1호 빵집 '마을빵집 동동'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마을빵집 동동'은 인공색소 등을 쓰지 않고 천연발효종을 이용한 건강한 빵을 만들어 지역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남해=이동렬 기자

상주중과 상주초가 함께 성장반 배경에 학부모와 교사ㆍ주민이 뜻을 모아 만든 ‘남해상주동고동락’을 빼놓을 수 없다. 동고동락은 상주중을 매개로 이주한 학부모와 교사, 지역 주민 42명이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2017년 4월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살린 협동조합이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하며 지속 가능한 마을 생태계 구축에 나선 것이다.

협동조합은 경기 용인시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다 두 아이 교육을 위해 상주에 둥지를 튼 이종수(54)씨가 주도했다. 이사장을 맡아 조합을 꾸리고 있는 이씨는 “학교가 없으면 젊은 세대가 떠나고 마을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며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놀 수 있는 좋은 학교를 만들고, 더불어 행복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게 우리 조합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동고동락의 설립 정신은 △경쟁이 아닌 연대하는 삶의 공동체 △학교와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우는 교육 공동체 △개인소비적 삶이 아닌 함께 나누는 경제 공동체 △함께 먹고 춤추고 노래하는 행복한 마을 공동체다.

협동조합은 설립 초기 아이들과 학교 중심의 사업을 벌였다. 첫 사업으로 2017년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공간 만들기를 우선적으로 추진해 상주초 인근 빈집을 고쳐 ‘상상놀이터’를 만들었다. 전담교사 1명과 함께 일일교사로 참여하는 학부모들이 운영을 맡아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의 방과후 돌봄교실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업에도 도전해 취미교실과 인문학 강의, 마을 여행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지역 특산물 판매도 시작했다. 해산물과 농산물 등 지역특산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판매하다가 지금은 매달 지역 특산물을 정기 구독자들에게 배달하는 ‘동동 꾸러미’로 발전시켜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는 마을커뮤니티 공간인 ‘상상회관’를 열었고, 2021년에는 상주면 1호 빵집인 ‘마을빵집 동동’을 오픈해 운영 중이다. 마을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빵집은 인공색소와 유화제, 개량제 등을 쓰지 않고 천연발효종을 이용한 건강한 빵을 만든다. 빵집에서는 매달 한 차례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모임’을 여는 등 지역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랑논 살리기와 8개 학교 돌봄급식을 담당하는 ‘식량창고’ 사업, 치유농업 공간인 ‘동동농장’ 등 협동조합의 사업은 교육과 농업 분야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 여기에 대안교육문화센터 및 생태교육마을인 ‘보물섬 인생학교’도 준비 중이다.

조용순 남해상주중 교장은 학교와 학부모, 학생, 마을주민이 함께 참여해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상주중의 가장 큰 특징이라며 지역소멸위기 극복을 위해선 교육을 매개로 젊은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해=이동렬 기자

조용순 남해상주중 교장은 학교와 학부모, 학생, 마을주민이 함께 참여해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상주중의 가장 큰 특징이라며 지역소멸위기 극복을 위해선 교육을 매개로 젊은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해=이동렬 기자

작은 학교가 지역을 살린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 상주면 인구는 실제로 최근 증가 추세다. 1995년 2,919명에서 2020년 1,609명으로 거의 ‘반토막’ 났으나 2022년 1,615명으로 소폭 반등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젊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상주면 인구 중 39세 이하 비중은 2016년 3.80%, 2020년 3.74%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해 3.88%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37년째 상주중에 몸담고 있는 조용순(63) 교장은 “인구소멸 극복을 위해 단순히 인구 유입도 중요하지만 마을과 학교의 존속을 위해서는 젊은 인구 유입이 급선무고,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학생과 학부모가 이주하고, 주민과 학부모가 함께 건강한 학교를 만들어 가는 상주중학교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군 상주면 인구와 학생 수 현황 및 상주면 지도. 그래픽=김문중 기자

경남 남해군 상주면 인구와 학생 수 현황 및 상주면 지도. 그래픽=김문중 기자


남해= 이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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