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교통사고 사기꾼' 잡아낸 막내급 검사의 촉... "억울한 피해자 없어야죠"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수사 당시 모든 범행을 인정해 기소된, 증거도 명백해 보이는 단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정에서 ‘너무 억울하다’고 하길래 피고인의 주장을 꼼꼼히 들어봤죠.”
합의금 때문에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고, 피해자 재판에 증언까지 한 사기꾼을 잡아낸 대구지검 공판2부 박강일(37ㆍ사법연수원 48기) 검사의 말이다.
처음엔 단순 교통사고로 보였다. A씨는 지난해 11월 7일 오전 4시 20분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인근에서 술에 취해 B씨의 차량을 들이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모든 혐의를 인정했던 그는 첫 공판에서 음주운전은 시인하면서도 “상대방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것 같다”며 입장을 바꿨다.
진술을 유심히 듣던 박 검사는 A씨의 억울함을 받아들이고, B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신청했다. 검찰 조서 등 증거에 피고인이 이미 동의해 증인신문 없이도 유죄 판결이 가능했지만, 진실을 찾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결국 법정에 서게 된 B씨 증언은 박 검사의 의심을 키웠다. ‘왜 새벽 4시에 운전을 했느냐’는 돌발질문에 그는 “스무 살 때 돈을 빌려줬던 여자에게 돈을 받으려 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여성의 연락처나 근무지를 알지 못했고, 만나기로 약속도 하지 않았다.
박 검사의 촉은 적중했다. 수사를 시작하자 B씨의 사기를 뒷받침하는 물증이 속속 나왔다. 구치소 접견녹취록에선 그의 고의 사고를 암시하는 발언이 발견됐고 통화 녹음, 계좌내역 등엔 B씨가 A씨에게 합의금을 강요해 받아낸 정황이 담겨 있었다. “A씨가 차선변경을 하려 할 때 B씨가 고의로 속도를 높였다”는 B씨 동승자의 실토는 결정타가 됐다. 피해자를 자처하던 B씨는 오히려 모해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 역시 A씨의 음주운전만 유죄로 인정했다. 피고인과 늘 대척점에 서기 마련인 검사가 되레 피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준 수호천사가 된 셈이다.
박 검사는 검사복을 입은 지 5년 차에 접어든 공판부 막내급 검사다. 하지만 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공소유지 능력은 검찰 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단적으로 올해 2월 대구지검으로 발령 난 후 불과 몇 달 만에 위증사범을 6명이나 인지했다. 소주병으로 상해를 입히고도 무죄를 받은 사건 항소심에서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증언 등 증거를 보강해 유죄 판단을 이끌어 냈다. 이렇게 13명이 법정 구속됐다. 대검찰청이 박 검사를 ‘6월의 공판우수검사’로 선정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박 검사는 9일 “공판 검사에겐 하루 수십 건씩 처리하는 단순 사건일지 몰라도, 피고인이나 피해자에겐 일생에 한 번뿐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며 “억울한 일이 없도록 더 꼼꼼히 살피려 노력한 것에 불과하다”고 겸손해 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